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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2월 21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박재원 나누리기자 (불광중학교 / 1학년)

추천 : 225 / 조회수 : 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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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부여와 공주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 웅진, 지금의 부여와 공주는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어 옛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기자는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백제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부여, 공주를 찾았다. 부여는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이곳 저곳에 유적이나 볼거리들이 많았다.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들을 골라 소개한다.

부여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충남지역의 고고, 미술 관련 유물 1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고, 그 중 1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토기, 그릇부터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까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곳이다. 백제가 지금의 일본인 왜로 진출하면서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는 증거 자료, 영상들도 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곳이었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7세기의 백제 때 지어진 탑으로, 현존하는 석탑 중 1500년을 지켜온 가장 오래된 탑이다. 백제의 표석처럼 서있는 이 탑은 지금은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부여 정림사 터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목탑의 구조와 비슷하지만, 돌의 특성을 잘 살려 만든 우아한 형태이다. 이 석탑 옆에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있는데, 정림사를 주제로 하며 백제 불교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낙화암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말로만 듣던 낙화암이 바로 부여에 있었다. 백제 의자왕 때 나라가 망해가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한 바위에서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낙화암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무너지던 날(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충절과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으로 세계인들도 감동할 만한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는 문화유적지이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금강 위에 우뚝 선 낙화암을 보니 그곳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낙화암에 올라서니 한편으론 ‘과연 여기서 떨어질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곳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바로 강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 주변도 3,000명이 한꺼번에 모이기엔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떨어졌냐 떨어지지 않았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만큼 나라가 힘들었다는 것과 백제인들이 굳건함을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여의 백제역사재현단지 내에 건립된 백제역사문화관은 고유한 대백제 문화를 부활시킨 곳으로, 실제 출토 유물의 전시가 아닌 백제시대의 중요한 유적이나 역사적 사실을 축소모형, 그래픽, 영상 등으로 표현한 것으로, 예를 들면 성왕의 사비천도행렬, 사비도성, 미륵사, 정지산 제사유적 등을 축소모형으로 재현하였다. 또한, 무령왕릉, 백제금동대향로 등에 대한 설명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백제의 궁궐을 재현하여 만든 곳이 있었는데, ‘계백’, ‘대풍수’ 등의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했다. 궁의 일부만이 아니라 궁의 모든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백제의 궁은 엄청난 규모였다. 그 안에는 연못도 있었다. 실제 유물은 없지만, 백제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배우고, 재현물을 더 가까이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에 유물을 직접 보는 만큼이나 의미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공주에도 또한 백제의 역사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이 있다. 바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지하로 굴광하여 연화문이 새겨진 벽돌로 널방을 만든 단실묘이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 5, 6호분의 배수로를 공사하는 중 우연히 발견한 무령왕릉의 가장 중요한 유물은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묘지석이다. 이 묘지석에 의하면 “왕은 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셨고 3년째 되는 525년 8월 12일 왕릉에 안장하였으며, 왕비는 526년 12월에 돌아가셨고 529년 2월 12일에 왕릉에 안장하였다.” 고 쓰여져 있다고 한다. 무령왕릉이 고고학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고대의 고분 중 묘지석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피장자의 신분과 정확한 사망연대를 알려준 최초의 왕릉이라는 점이다. 또한, 금제관식, 귀걸이 등의 금속 공예품들의 정교한 제작 기술을 통해 백제 미술의 발달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유적지 보호로 능 안에 직접 들어가볼 순 없었지만 무령왕릉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 실제와 똑같이 만든 공간, 그리고 무령왕, 송산리 유적들에 관한 설명이 있는 전시관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번 부여와 공주의 문화답사를 통해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백제의 역사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보았을 때는 백제인의 뛰어난 섬세함과 예술성,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돌아오니, 지식을 꽉꽉 채워온 느낌이었고,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유익한 여행을 다니며 지식을 쌓아가고, 평소엔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박재원 나누리기자 (불광중학교 /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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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아
서울길음초등학교 / 5학년
2013-02-21 16:57:44
| 박재원 기자님의 반가운 기사를 통해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주와 부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네요. 기사 잘 읽었고 추천드려요^^그리고 정말 반갑네요^^
박재원
불광중학교 / 1학년
2013-02-21 23:28:34
| 최리아 기자님도 정말 반갑습니다. 누구보다도 제 음악기사에 성원을 주신 최리아 기자님 덕분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단장될 신문에서도 리아기자님의 알찬 기사 기대하겠습니다.^^
고민욱
서울보광초등학교 / 5학년
2013-02-24 10:36:28
| 박재원기자님.. 저도 부여 탐방 후 기사를 쓰긴 했지만 이렇게 멋지게 쓰진 못했어요. 자세하고 알찬 정보 감사해요.
그리고 박재원 기자 선배님의 글을 만났다는 게 더 좋아요. 추천..
박재원
불광중학교 / 1학년
2013-02-24 12:34:23
| 고민욱 기자님 칭찬 말씀 감사합니다. 제 글에 항상 댓글로 힘을 주시는 기자님들 덕분에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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