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욱서울보광초등학교
2011년 12월 15일, 서울 서초구 소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12월 10일부터 18일까지 열린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라는 공연을 보았다. 궁중연례악은 조선시대에 나라의 큰 경사가 있어서 진행된 잔치이다. 태평서곡은 1795년 정조대왕이 환갑을 맞이하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 중 화성행궁에서 벌였던 잔치를 보여준다.
맨 처음으로 막이 내려와 있는 상태로 혜경궁 홍씨에 관한 이야기와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지에 관한 자막과 나레이션이 나왔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어린 정조와 혜경궁 홍씨는 궁궐에서 쫓겨 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오랜 세월 혼자서 정조를 훌륭하게 키워낸 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1744년에 세자빈이 되었고, 1762년에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 그리고 1776년 정조가 즉위했으며, 1815년에 죽었다고 했다.
막이 오르자, 세종대왕이 만든 ‘여민락’ 이라는 음악이 나왔다. 모든 순서는 여집사의 큰 소리에 따라 진행되었다. 혜경궁 홍씨로 나온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 선생님과 정조가 집사들과 함께 연회가 열리는 연회장에 착석했다. 혜경궁 홍씨역을 맡은 분들은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어머니들이다. 이날 배역을 맡은 말리 홀트 선생님을 비롯해 김을동(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겸 국회의원), 시인 문정희, 크라운베이커리대표이사 육명희 등이 열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혜경궁 홍씨와 정조가 앉자 왕 이외의 다른 신하들이 혜경궁 홍씨께 첫 인사로 절을 2번 하였다. 집사들이 휘건과 꽃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때 다른 집사 2명은 밑으로 내려와 꽃을 뿌리기도 했다. 혜경궁 홍씨는 머리에 커다란 가발 같은 것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무거워 보었다.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는 가발을 벗어서 곁에 두었다.
다음으로 옆에 있던 상궁이 홍씨의 덕을 칭송하고, 축수를 기원하는 글인 치사문을 읽었다. 홍씨는 "오늘의 이 경사를 전하와 더불어 만백성과 함께 하겠노라" 는 명령을 내렸다. 말리 홀트 선생님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한국말을 잘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후에 정조가 “천세, 천세, 천천세!” 라고 외쳤다. 참석한 내빈과 외빈들도 일어서서 따라 외쳤다.
정조대왕이 첫술을 올릴 때에 뒤에서는 음악과 함께 1000년에 1번 열린다는 선도를 바치는 내용인 ‘헌선도’란 춤을 추었다. 내빈 대표인 중전이 나와 두 번째 잔을 올릴 때는 음악과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궁중 북춤인 ‘쌍무고’를 추었다. 머리에 축하의 꽃을 꽂은 무희들이 둥둥하고 북을 치며 추는 춤이다. 세 번째는 종친의 대표가 나와서 술을 올리니 백학과 청학 두 쌍이 나와 춤을 추고 연꽃 속에서 예쁜 동녀가 나오는 ‘학연화대무’라는 춤을 추었다. 그렇게 모두 술잔을 올렸으면 연회의 마지막 순서로 대취타라는 음악이 나오고, 뱃놀이를 형상화시킨 ‘선유락’이라는 춤을 추었다. 선유락은 배에는 어여쁜 동녀가 앉아 있고 배 주변에는 무희들이 배와 연결된 끈을 잡고 돌면서 추는 춤이다. 무대에서 펼쳐졌던 춤들은 모두 박물관에 있는 의궤에서 볼 수 있는 궁중 무용들이다. 마지막 술잔을 올린 후, 상궁이 모든 예를 마쳤다고 말한다. 그러면 혜경궁 홍씨가 걸어 나가고, 내빈들이 홍씨를 따라 나갔다. 다음으로 정조가 나간 후, 외빈들이 나갔다.
왕조의 꿈, 태평서곡 공연을 보니 이 공연은 조선 왕실은 회갑이나 칠순 때에도 아주 크게 행사를 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조대왕의 효심도 엿 볼 수 있었다. 여러 궁중음악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멋진 궁중무용도 볼 수 있었다. 뒤에 앉아서 연주를 하던 악사들과 참석한 모두가 머리에 축하의 꽃을 꽂고 있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모두 예법에 따라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어떻게 했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국립국악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왕조의 꿈, 태평서곡’ 기회가 된다면 옛날 조선 사람들이 되어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구경하러 가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