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개

박성경오치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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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읽는 것을 좋아해서 도서관을 자주 갑니다. 방학때는 알찬계획으로 숲체험, 천체관측, 과학원리를 알아보는 대전 주니어엑스포와 가까운 대학에서 하는 과학실 견학과 실험도 해보고, 기록에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곤충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주말에는 바이올린 연습과 플룻연습도 하고 있으며, 음악듣는것을 좋아합니다. 집 근처에 비엔날레와 국립박물관이 있어서 역사체험과 각종 행사에 자주 참석하기도 합니다. 주중에는 가까운 오정초등학교 방과후 영어센터를 다니며 영어도서관의 영어책 읽는 것도 즐겁습니다. 뭐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등2학년때부터 혼자서 버스를 타고 일곡도서관에 다닐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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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경 기자 (오치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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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탐방

10월 3일 개천절에 가족과 함께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함경도 3.1운동 시위 현장에 뿌려진 독립선언서 초판(복제)을 보았고, 종이 뒷면에는 순사가 습득한 종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3.1운동은 학생, 지식인, 종교인부터 노동자, 농민에 이르기 까지 각계각층의 참여와 호응을 얻었으면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광장에서 한·일 학생의 대 충돌 사건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과 1924년 한·일 야구 경기 도중 광주보고생이 일본인에게 집단구타당한 장면은 이 사건으로 광주보고 제 1차 동맹휴학투쟁이 발발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센닌바리라는 일장기가 그려진 허리띠를 띠고 억울하게 징병을 나가서 러일전쟁에서 총알받이로 죽어간 많은 우리 선조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으면 일본군이라고 포로로 잡혀서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고생하다가 죽어간 정말로 억울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 조상들 중에는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재능 있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 일본을 굴복하지 않은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중에 우리나라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김교신 할아버지의 사진을 봤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시고, 우리말 성경을 연구하고, 일본 이름을 거부하고, 아주 많은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의거 직전 태극기 앞에서 김구 할아버지와 찍은 윤봉길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를 위해 폭탄을 던지면서 자기 목숨을 바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사가 되어 황거를 폭격하려한 권기옥 여사 역시 참 멋있는 분이셨습니다. 학교를 만들어서 배우지 않으면 광복을 말할 수 없다고 여성을 가르친 차미리사 여사의 글도 읽었습니다. 신의주 철도호텔, 의천경찰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23살 임산부 안경신 여사는 아기가 곧 태어날 것을 알고도 폭탄을 던진 일이 당시 신문에 났습니다. 그 외에도 무명지를 잘라서 ‘조선독립을 원한다.’ 라고 혈서를 쓴 남자현 여사, 독립운동하다 고문으로 두 눈을 찔려 봉사가 되어도 독립운동을 한 김락 여사, 상해에서 애국청년을 뒷바라지 하고 교도소에 있는 아들 김구 선생에게 밥을 갖다 주며 나라를 사랑한 곽낙원 여사, 항일 투쟁을 일깨우다 교도소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 받아가면서도 비굴하게 살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이병희 여사, 독립군으로 비밀문서를 통째로 외우고, 우리나라의 해방을 바라며 어려움을 극복한 오광심 여사 등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드리고 싶습니다. 독립운동은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이 다 같이 한다는 것도 보고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