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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12월 2일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역사 630 2010-12-06 79

저는 지난 6월 22일 퓰리처상 사진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세계의 언론사 기자들이 꿈꾸는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사진전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퓰리처상은 1917년 창시되었는데, 미국의 조지프 퓰리처(1847-1911)가 ‘공공봉사, 공공윤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 데 유산을 사용하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지프 퓰리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미국의 최고 신문 사업가가 되기까지 평생을 신문에 실을 기사를 생각하고, 신문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 할 정도로 신문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 훌륭한 분에 의해서 탄생한 퓰리처상의 영예의 작품들 중 언론보도 사진 145점을 한 데 모은 역사의 현장이,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다는 사실은 정말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퓰리처상 전시회의 역사의 현장은 예술의 전당에서 6월 22일부터 8월 29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관심있는 많은 분들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역사의 현장이 주는 느낌을 느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취재에 선발 된 푸른누리 기자단 20명은 먼저 퓰리처상 전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역사의 순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여기 저기서 "아!"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을 끈 작품은 ‘세계무역센터 폭발’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바라 보고 있는데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들어 왔습니다. " 이 사진은 아마추어 기자가 순간 포착으로 찍어서 유명하게 된 것인데, 아마추어라고 포기하지 말고 노력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용기가 났습니다.


많은 퓰리처상 작품들도 언제 어디서나 사진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퓰리처상 전시회의 관람을 마치고 6.25전쟁 중에 무너지는 대동강 철교를 찍은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맥스 데스포’ 대 선배 기자와의 인터뷰 시간이 있었습니다.

- 사진이 증거 이외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 사진은 찍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사진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처럼..."


- 어떻게 해서 기자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처음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언가를 하기를 갈망했다. 그 때 형이 AP통신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저녁에는 형의 회사에서 일을 돕고 낮에는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년 후에 AP통신에 자리가 나서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후회는 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학교를 그만두라는 얘기는 아니다. (웃음)"


- 왜 위험한 종군 기자를 하시게 되었나요?

"나는 6.25전쟁에 취재하기를 원했다. 전쟁은 위험하지만 새로운 뉴스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위험한 전쟁 중에는 사진을 찍는 방법도 특별한가요?

"열심히 찍다보면 자신만의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전쟁 중이라고 내 생명이 위험한데 어떻게 사진을 찍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절대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사진에 대한 사명감이 중요한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나는 역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위험한 전쟁을 많이 경험하셨는데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은 아주 위험하다.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다른 사진들도 많이 찍었지만, 전쟁의 위험한 참상을 알리는 일이 가장 보람있는 것 같다."


- 6.25 전쟁 중에 대동강 철교를 찍어 퓰리처상을 받게 되셨는데, 그 때 대동강철교 사진은 어떻게 찍으셨나요?

"그 때는 두꺼운 장갑을 두 개나 끼고 있었지만 손이 얼 정도로 추운 계절이었다. 게다가 그 때는 지금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고 테잎을 돌리는 구시대 수동카메라여서 더 힘들었다. 또 중공군이 내려오고 있어서 모두가 위험을 무릎쓰고 피난을 가는 상황이라 더욱 더 힘들었다."


- 종군기자를 하시면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인가요?

"취재 당시에는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퓰리처상을 받고 나의 작품이 사랑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보람을 느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인터뷰 질문을 끝으로 "어떤 사진이 제일 좋은가?"라는 질문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사진이 가장 좋다."라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고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인자하신 분이 위험한 전쟁터에서 종군기자로 일하셨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종군기자를 해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일간신문에 실린 맥스 데스포의 종군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역사의 현장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진에 실린 맥스 데스포와 함께 한 사람들이 여러 분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도 전쟁 중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 사진 속에 숨어 있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으니 전쟁이 얼마나 긴박하고 아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가 그런 전쟁터 속을 누비는 종군기자였고 전쟁을 이겨내고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니 정말 운이 좋으시면서 용기도 있으시고 대단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퓰리처상 전시가 열리는 로비에서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를 뵌 순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따뜻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스 데스포 종군기자와 기념촬영>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는 전시장에서도 카메라를 손에 항상 들고 계셨습니다. 나는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는 저보고 "모자를 벗어야 이쁘지."하시며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푸른누리 모자를 벗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퓰리처와 함께 한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와의 사진은 제 가슴속에 영원히 담아 두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속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니셨던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고귀한 생명속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이 고난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향하여 발전하는 모습을 우리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주세요.

정유진 독자 (서울삼성초등학교 / 6학년)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 상’!

예술의 전당에서 퓰리처 상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꼭 여행가는 전날 밤처럼 설레는 기분이었습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진실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진을 찍어 퓰리처 상을 타신 ‘맥스 데스포’종군기자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목숨 건 전쟁터에서 살아돌아 온 종군기자여서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나 인자하신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푸른누리 기자들도 나중에 멋진 ‘퓰리처 상’을 많이 받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정유진 [jyujin]  
 
홍문주 2010-12-06 09:28:38 저도 이 사진전에 갔습니다. 저는 종군기자 할아버지를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추천합니다
강다혜 2010-12-07 17:41:36 언니! 나 다혜기자야~
글 너무 잘썼어!
작년에도 언니 퓰리처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받을 수 있을것 같아~~
신홍규 2010-12-26 23:39:34 축하합니다. 다음에도 열심히 해 주세요!~
정지수 2010-12-29 11:15:41 세상에 전쟁이 없으면 좋겠어요. 글을 참 잘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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