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개

김윤지구지초등학교

기자소개

안녕하세요, 구지초등학교 4학년 김윤지입니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에 자주 다녀 책에 대한 관심이 많고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군가가 저의 글을 읽는 것이 기쁘고 저 또한 책을 읽고 많은 지식들을 얻고 가는 것이 기쁩니다.

그 중에서 꿈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는 꿈에 대한 저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 꿈은 예전부터 자주 바뀌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작가, 요리사 등 제가 원하는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한 책 덕분에 저는 심리학자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는 사람들의 심리를 탐구하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람들의 심리는 흥미롭습니다. 그 중 사람마다 같은 심리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어떻게 심리가 같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는 심리학에 대한 다른 책과 정보를 찾아보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꿈에 대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저 또한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제 꿈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준 책에게 고마워합니다. 책은 영원한 제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른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다.

바로 푸른누리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푸른누리와 친해져 기사도 쓰고 푸른누리 기자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된다면 으뜸기자를 노려보고 기사도 열심히 잘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문소개

선서! 파랑새 신문은, 1. 정확한 정보로만 기사를 쓰고! 2. 항상 알찬 정보를 모으고! 3. 열심히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파랑새 신문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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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기자 (구지초등학교 / 4학년)

추천 : 40 / 조회수 : 202
조선, 그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다
한글날은 매년 10월 9일마다 찾아오는 우리의 소중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바로 세종대왕이다. 9월 22일, 기자는 친구들과 함께 세종대왕 영릉으로 출발했다. 영릉에서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고, 명성황후 생가에서 명성황후의 일생에 대해 살펴보는 등 조선시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은 태종 이방원의 아들로, 태종 이방원은 왕의 자리 때문에 형제들을 죽인 불같은 성격의 왕이었다. 그런 태종의 첫째 아들은 바로 양녕대군이었는데, 양녕대군은 어려서부터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학식도 풍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당할 수는 없었다. 충녕대군은 책을 너무나도 좋아해 똑똑한 관리들도 지겨워서 읽지 못한다고 하는 책들도 여러 번 읽는 최고의 책벌레였다. 양녕대군은 그런 충녕대군이 성군이 될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약간 미친 척을 하게 된다. 기생들과 어울려 놀고 술을 항상 먹는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뒤이어 둘째 효녕대군도 승려가 되어 충녕대군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하여 충녕대군은 왕세자가 되고 얼마 뒤, 조선의 왕이 되었다. 이 충녕대군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아주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백성을 위해 편리한 도구를 발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천했다. 세종대왕의 발명품으로는 먼저 혼천의가 있다. 혼천의는 낮밤의 길이를 재어주는 도구로, 지금의 만 원 지폐 뒤에도 새겨져 있는 위대한 도구다. 그리고 농사직설도 편찬했다. 조선 백성들은 중국의 농사법을 이용해 농사를 짓곤 했지만, 중국과 조선은 그 지형과 날씨가 달랐기 때문에 농사를 성공적으로 지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세종대왕은 학자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지형과 날씨에 대해 연구를 했고, 그에 적합한 농사법이 담긴 책을 편찬해냈다. 그리고 자격루라는 물시계도 만들었다. 자격루는 알람시계와 물시계의 역할을 두 가지 다 하는 편리한 도구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발명품 중 무엇보다도 가치있는 것은 바로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바로 우리가 쓰는 한글이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세종대왕은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한문을 어려워하는 백성들을 위해 반대에 굴하지 않고 훈민정음이 널리 퍼지도록 했다.

이처럼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최고의 성군이었다. 그의 릉인 영릉을 찾아가보면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왕릉 위에 음식을 놓거나 할 수는 없으니 그 앞에 정자각을 세워 거기서 제사를 지내곤 한다. 정자각은 맞베지붕을 하고 있어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상징한다.


위대했던 세종대왕의 릉을 뒤로 하고 기자는 친구들과 함께 명성황후 생가로 출발했다. 명성황후는 조선의 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민 씨 집안이다. 흥선대원군의 선택으로 그녀는 쉽게 왕비가 될 수 있었다. 기록에 이르면 그녀는 무척 영특하고 똑똑했다. 하지만 시대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명성황후가 고종과 있었던 당시는 일본에게 압박을 당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명성황후는 조선이 강대국의 도움을 받았으면 했지만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달랐다. 흥선 대원군은 조선이 서양, 미국과 교역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조선이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야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로 인해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일어났던 일 중 하나는 갑신정변이었는데, 개혁파 세력인 김옥균 등이 우정총국이 열릴 당시 명성왕후인 민 씨 세력을 몰아내려하다 3일 만에 끝난 싸움이었다. 두 번째로는 동학혁명이라는 싸움이 일어났었는데 일본과 정부에 화가 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일이었다. 이 혁명에서는 전봉준이 대표로 일본과 정부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세 번째로 갑오개혁이라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야말로 법을 바꾼 일이었다.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과거시험도 폐지했으며 남편을 잃은 과부들도 다시 재혼이 가능하게 된 큰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을미사변이 있다. 을미사변이란 일본 미우라라는 사람이 명성왕후를 죽이려고 명성왕후의 처소에 들어가 칼로 죽인 일이다. 그리고 그 시체를 태워 뼈를 향원정에 뿌렸다. 명성왕후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강대국으로 키우려 했던 최고의 국모이자 여장부였다.

명성왕후에 대해 알아본 뒤, 기자는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는 나옹선사가 화장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나옹선사는 바로 무학대사의 스승이었다. 무학대사는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운 공신이었다. 그렇게 태조 이성계와 함께 나라를 세운 위대한 무학대사의 스승인 만큼 나옹선사는 불교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신륵사를 쭉 걸어가다보면 부도탑이라는 탑이 있다. 스님은 항상 채소만 드시기 때문에 몸에서 사리라는 물체가 나온다. 스님의 시체를 화장하면 사리가 나오는데 나옹선사의 사리를 보관해둔 탑이 바로 부도탑인 것이다. 부도탑은 다른 탑과는 달리 둥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연꽃 같이 생긴 봉오리가 하나 있다. 또한 그 앞에 등이 하나 있는데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등 위에 조그마한 스님 장식물을 세운다고 한다.

그리고 신륵사에서는 불교의 4대 보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목어이다. 목어는 바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물고기다. 두 번째는 법고다. 법고는 가죽으로 되어 있는 북이다. 법고는 땅에 있는 생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해준다. 세 번째는 운판이다. 운판은 하늘에 있는 생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마지막은 범종이다. 범종은 큰 종인데 범종은 모든 생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이번 체험학습에서 세종대왕의 업적과 명성왕후, 신륵사의 4대 보물과 나옹선사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어 정말 유익했다. 자그마치 519년이나 내려온 조선의 역사, 사람들의 마음 한 곳에 깊숙이 자리 잡아 전해져 내려오길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