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추석

추석에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납니다. 우리 시골은 전라남도 고흥군 호동리인데, 길이 막힐 때는 인천에서 아빠차를 타고 하루종일 갈 때도 있습니다. 정말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 도착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차 소리를 듣고 "오메, 내 사랑들 왔는가"하며 반겨주십니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입니다. 그 말을 떠올리면 힘이 마구 솟아나고 웃음이 나옵니다.

시골에서는 추석보다 설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추석에는 할 일이 많아 무척 바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논에 물을 대러 가시고 소에게 줄 볏단을 잘르십니다. 할머니와 마늘과 고구마를 심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맨 처음 시골에 도착해서 절을 한 다음 하는 일은 할아버지 논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키운 논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볏알을 주시면 껍질을 까서 하얀 쌀만 먹습니다. 집에 있는 쌀은 딱딱한데 방금 까서 먹는 쌀은 쫄깃쫄깃합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할아버지 논이제, 워떠냐? 멋지제. 벼 찧어서 쌀 맹글어줄텡께 마이마이 묵고 볏대처럼 쑥 커부려라. 알았제?" 매번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럼 오빠와 나는 "할아버지 맛있게 먹고 열심히 공부할게요"라고 약속합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하하하 웃으시는데 그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논두렁에는 물이 흐르고 그 안에는 미꾸라지가 있습니다. 이름 모르는 들꽃도 피어 있고, 할머니께서 심어 놓은 콩도 꼬투리를 달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할아버지를 따라 김매기를 합니다. 잡초들을 뽑아주어야 벼들이 자랄 공간이 더 많고 영양가도 많아진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논에 서서 보는 하늘은 멋지고, 구름도 아름답습니다. 작년 추석에는 국어시간에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멋진 농부십니다"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해 칭찬을 받고 시골에 가져가 보여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셔서 글짓기한 것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올해도 할아버지 논에서 얼마나 멋진 풍경을 보게 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저녁 때 뒷밭에서 고추와 깻잎, 호박을 따다 할머니와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특히 할머니와 송편 만들기는 정말 즐겁습니다. 할머니께서 방앗간에 가셔서 미리 빻아오신 쌀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붓고 반죽을 합니다. 고운 가루가 덩어리로 되는 과정이 신기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반죽을 다 한 후 떼어서 동그랗게 공처럼 만들고 손가락으로 홈을 만들어 깨설탕, 밤, 콩을 넣어 모양을 만듭니다. 꼭 작은 만두 같습니다. 예전에는 오빠도 송편을 같이 만들었는데, 자꾸 로봇이나 자동차를 만들어서 찌는 데도 오래 걸리고 쌀가루도 많이 들어가 할머니께서는 삼촌과 뒷밭에 가서 소나무 잎을 따오게 하거나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게 합니다.

송편을 찔 때는 구멍이 송송 뚫린 냄비에 면보자기를 깔고 산에서 따온 소나무 잎을 깝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달콤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가끔 터지는 송편도 있는데 그래도 맛있습니다. 오빠와 나는 송편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추며 맛있게 먹습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성묘를 갑니다. 성묘를 갔다가 할머니의 친척들과 할아버지의 친척들을 만납니다. 큰 할머니, 이모 할머니, 당숙과 당숙모, 작은 할아버지, 외삼촌, 이종사촌, 고종 사촌 등 무척 많습니다. 예전에 시골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이웃이 다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합니다. 저는 작은 고모를 닮아서 고모의 성함을 따 ‘작은 희정이’ 불리기도 합니다.

올해 추석도 작년처럼 가족이 모두 모일 것입니다. 고종사촌 민지가 얼마나 컸을지 궁금하고 소가 낳은 송아지도 보고 싶습니다. 추석이 있어서 멀리 있던 가족이 모이고 몰랐던 친척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추석이 참 좋습니다.

류연희 독자 (인천양지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