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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12월 2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오하나 독자 (중부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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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한용운 선생님

우리 집과 남한산성은 걸어가도 30분 안 걸릴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주말에 많이 올라가곤 한다. 남한산성의 역사에 대해 취재를 하려고 기자들과 같이 올라간 적도 많다. 남한산성에 대해 쓸려면 넘쳐날 정도로 쓸거리는 많다. 요번에는 우리동네 사랑방의 주제에 맞춰 남한산성 안에 있는 만해 기념관에 대해 취재를 했다. 만해 기념관은 민족 시인이시고 독립 운동가이셨던 만해 한용운 선생님에 대해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처음에 한용운 선생님을 생각하면 민족대표 33인이었다는 것과 독립운동가 라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만해기념관에 와서 아, 한용운 선생님은 시인이시기도 했고 승려이시기도 하고 독립 운동가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해기념관에 들어와 관람을 하고 있는데 박물관을 관리하고 계시던 어떤 선생님이 오셔서 나와 있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을 1시간이나 넘게 해주셨다.


"한용운 선생님은 충청도 홍성군에 태어나셨는데 충청도에 난세에 영웅들이 많았는데 한용운 선생님 생가 주위에는 최영 장군, 김좌진 장군의 생가들이 있어. 설악산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셔서 설악산 백담사에도 만해 기념관이 또 있어. 마지막에 사셨던 곳은 성북동 심우장이라는 곳인데, 북향으로 지은 유명한 집이야. 언덕에 있는 주택가에 있는데 옛날에는 그 곳에 조선총독부가 있었어. 집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조선총독부가 보여서 보기 싫은 한용운 선생님은 집을 북향으로 지은거야. 한용운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그 때 동학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어제까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잡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 진거야.


혼란스러워진 한용운 성생님은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게 되었다가 설악산에 가면 스님이 있다고 해서 백담사라는 절로 찾아갔어. 백담사에 있다가 건봉사로 갔는데 건봉사가 한용운 선생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어. 강화도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으라고 해서 먼저 부산항을 열고, 원산항을 열었는데 건봉사가 원산항에 있어. 당시에는 개항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항구 주위에 있는 지역을 정해 그 곳에서만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했어. 그래서 그 지역에서만 문화나 문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개항장은 특별한 곳이었어. 그 곳에는 관공서가 있어서 한용운 선생님의 서양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


이 그림은 국가기록화인데, 우리 민족대표는 33인이고 독립선언은 1919년 3월 1일에 했는데, 이 그림 안에는 29명의 사람들이 있어. 나머지 4명은 어디에 갔을까? 원래 계획은 33명이 아니고 3월 1일도 아니었어. 그 당시 인구가 2000만 명이어서 민족 대표자가 200명은 되어야 겠다고 해서 200명을 뽑고 민족대표 사인을 하려고 왔는데 겁이 나는 거야. 그래서 핑계를 하면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결과적으로 사인한 사람은 33명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민족대표를 33명이라고 하는 거야. 원래 계획은 3월 3일이었는데 바뀐 이유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영향과 분위기가 있는데 먼저 미국의 민족자결주의주장, 세계1차 대전 끝난 후 이제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어. 큰 사건이 있었는데 명성황후가 돌아가시고 고종황제도 돌아가셨지. 화가나서 이젠 안되겠다 싶어서 하려고 하는데 고종황제의 인산날이 3월 3일이여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였지. 하려고 했는데 장례도 잘 치르지 못하면 안되니까 하루 앞당겨서 3월 2일에 하려고 하니까 주일이여서 또 앞당겨서 3월 1일이 된거야.


3월 1일에 33인이 모이기로 했는데 이 날에도 무서워서 4명이 도망을 간거야. 종로에 있는 태화관에서 했어."


원래 한용운 선생님에 대해 더 많은 설명들을 해 주셨는데 1시간이나 넘는 말을 다 옮길 수 없어 아주 짧게 정리를 했다. 하지만 아직도 쓸 것은 많다. 이렇게 한용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좀 더 그 시대의 역사와 한용운 선생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시관 안에는 우리나라에 2개 밖에 없는 1926년에 나온 님의 침묵 초간본이 있는데 일본에 의해서 다 사라지고 없어져서 아주 희귀하고 소중한 책이다. 만해 한용운 이라고 해서 조종현 이라는 분이 한용운 선생님을 추모하는 시의 원본도 전시 되어있었다. 전시관 중간에는 한용운 선생님께서 받으신 대한민국 건국 훈장도 보관되어 있었다.


한용운 선생님께서 지으신 님의 침묵을 조금 읽어 보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그 깊은 뜻을 알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의 뜻을 풀이해 놓은 것과 같이 보니 너무 감동적이고 얼마나 그 님이 그리운지 더 느낄 수 있었다.

오하나 독자 (중부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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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0-12-08 22:32:50
| 만해 한용운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기사를 읽으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정고은
용수중학교 / 1학년
2010-12-13 18:27:24
| 한용운 선생님에 대한 좋은 지식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송아영
성당중학교 / 1학년
2010-12-15 18:19:16
|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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