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개

홍리빈상당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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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푸른누리 2기,3기 기자로 활동했던 홍리빈 입니다. 4학년때부터 푸른누리로 활동하면서 푸른누리 여러기자들과 편집진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기사를 쓰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는 6학년때는 4기 기자로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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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누리 기자들과 함께 간 동행취재 기사만 모아놓은 ‘다 같이 가요, 동행취재’부터 우리 학교의 여러가지 최근 이야기를 담은 ‘도란도란 학교 이야기’,여러가지 전시회나 박물관을 주제로 쓴 ‘문화속으로 들어가자’라는 타이틀, 여행스케치 아래 첫째줄과 둘째줄, 셋째줄은 ‘상상 속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동시들을 바탕으로 신문이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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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빈 기자 (상당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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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8월 30일 우리 가족은 우리나라의 아픔이 있는 역사를 찾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보자고 아빠가 제안했다. 먼저 독립기념관부터 시작해서 강화도를 돌아보았다.


강화도는 고려때 몽고난을 비롯해 신미양요, 병인양요, 운양호 사건등 우리나라 슬픈 역사의 격전지였던 곳이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포대가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와 갑곶돈대를 가보았다. 특히 덕진진에는 흥선 대원군이 세운 경고비가 있었는데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는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바다의 척화비로도 불린다는데 대원군의 결연한 쇄국의지를 담고 있는 경고비 우측 상·하단부에는 탄흔이 남아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가장 규모가 큰 광성보에서는 신미양요때 제대로 방어도 못하고 미국의 신식군대에 밀려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안내판이 있어 지난 역사의 슬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고인돌공원과 평화 전망대 등 여러 곳을 갔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비록 최근에 복원된 곳이긴 하지만 고려궁지 내에 있는 외규장각이었다.


고려궁지는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송도에서 개성으로 옮긴 도읍터로 1270년(원종11년)에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궁궐로 사용되었다는데 1637년 병자호란시 함락되고 여러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이 무너지고 말았단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행궁을 건립하고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등을 건립하였으나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지금은 이방청만 남아있고 외규장각은 2002년 복원된 것이다. 조선 22대왕 정조임금은 1776년 국가의 중요 서적과 출판물, 연구 자료를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 규장각을 설치했다. 그리고 1781년 강화도에 규장각의 부속 기관인 외규장각을 세워 규장각 도서중 특별히 가치 있는 책들을 따로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6000여 권의 책이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외규장각과 함께 불타고 의궤를 비롯한 약 300여 권의 책이 프랑스에 약탈되어 갔다. 그리고 145년만에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에 있다. 이렇게 귀중한 문화재가 약탈당하고 소실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외규장각을 보고 나서 다음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을 보러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른 아침부터 외규장각 의궤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로 특별전시실이 붐볐다. 역사 교육으로 온 단체들도 많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숙연한 마음으로 의궤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의궤는 왕이 열람하는 어람용과 사고 보관용으로 제작하는 분상용의 2종류가 있는데 이번에 반환된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다. 의궤는 나라의 의전과 각종 행사의 순서, 동원 도구, 참여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기록이다. 그래서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국가 운영의 기준을 바로 지키기 위해 의궤를 제작했다는 것의 두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왕에게 올리는 의궤를 만드는 데 사용한 초주지는 색이 변하지 않는 종이라는데 그것을 모르고 20여년 전 미테랑 대통령이 가져온 책을 프랑스의 보존 기술이 뛰어나서 그렇더고 칭찬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다. 어람용 의궤는 가로 33cm, 세로 49cm에 겉표지는 구름문, 모란문 무늬의 암녹색 비단이고 놋쇠물림으로 묶었고 속지는 당시 일반 종이보다 두꺼운 초주지로 잘 번지지 않고 제목은 흰비단에 해서체로 속지의 물감은 식물성 천연 안료를 사용했다. 그리고 의궤에서 보이는 왕의 행차도는 왕의 위세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억울함을 직접 살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제 145년 전, 강화도에서 프랑스의 증기선에 실려 떠났던 의궤가 비록 말도 안되는 대여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우리에게 돌아오기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 묻혀 있던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알렸던 박병선 박사님의 공이 컸다고 들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온 힘을 다해 노력한 박병선 박사님의 수고로 우리는 이 귀중한 문화재를 우리 눈으로 보고 감동할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직 찾지 못한 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한번 보고 나서 다시 한번 봤지만 관람객이 많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도록을 사왔다. 차근차근 살펴 보고 싶어서. 의궤는 마치 예술품을 보는 듯한 느낌 마저 주었다. 전시관을 좀 더 넓게 해서 의궤의 의미를 더 세분화하고 우리가 의궤를 직접 넘기면서 볼 수 없으니 설명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약탈당하는 걸 보고 있던 예전의 약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모르게 빼앗기고 돌려 받지 못한 세계 여러나라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찾아보고 되찾아와 우리 문화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아야겠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생각해 보았다.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소실 된 것도 있지만 지키고 보존해 온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자랑스런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날을 위해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