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개

홍리빈상당초등학교

기자소개

저는 푸른누리 2기,3기 기자로 활동했던 홍리빈 입니다. 4학년때부터 푸른누리로 활동하면서 푸른누리 여러기자들과 편집진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기사를 쓰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는 6학년때는 4기 기자로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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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누리 기자들과 함께 간 동행취재 기사만 모아놓은 ‘다 같이 가요, 동행취재’부터 우리 학교의 여러가지 최근 이야기를 담은 ‘도란도란 학교 이야기’,여러가지 전시회나 박물관을 주제로 쓴 ‘문화속으로 들어가자’라는 타이틀, 여행스케치 아래 첫째줄과 둘째줄, 셋째줄은 ‘상상 속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동시들을 바탕으로 신문이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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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빈 기자 (상당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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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하오, 상하이!

12월 13일부터 3박 4일 동안, 중국 상하이를 여행하고 왔다.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인 상하이는 기자가 사는 도시인 부산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제적인 항구도시라는 것이다. 김해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해 중국 푸동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의 두 시간 동안, 기자는 비행기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 베이징 여행에 이어 중국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사이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를 현지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북부의 베이징과 남부의 상하이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도 궁금해졌다.


상하이 푸동 공항 착륙을 앞두고 창으로 비행기 밖을 내려다보았다. 뿌연 황토색의 큰 강이 보이고 높은 빌딩들이 우뚝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황푸강은 서울의 한강을 연상시켰다. 황푸강과 높은 빌딩들이 기자가 본 상하이의 첫 모습이었다. 상하이는 한강을 중심으로 나뉘는 서울의 강북과 강남처럼 황푸강을 중심으로 동쪽의 푸동과 서쪽의 푸시로 나뉜다. 비행기는 황푸강의 동쪽에 위치한 푸동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3박 4일의 일정이기 때문에 상하이의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기자는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 세 곳을 꼽아보았다.

첫 번째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다. 3․1운동 이후 점차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하기 전까지 상하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독립 운동을 펼쳤다. 기자가 갔던 임시정부 청사 역시 상하이의 여러 임시정부 청사 가운데 하나였다. 1926년부터 1932년에 상하이를 떠나기 전까지 사용하던 곳으로 임시정부 요원들이 가장 오랜 기간 활동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상하이 마당로에 위치한 3층 벽돌 건물 청사는 골목 안에 있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쓰인 한글 안내 표지판이 무척 반가웠다. 입장권을 받고 1층에서 임시정부의 활약상을 담은 짧은 영상을 관람한 뒤 안내원을 따라 청사를 돌아보며 설명을 들었다. 청사 건물 안에는 당시 사용된 가구와 생활용품, 임시정부 요원들의 집무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 이곳에서 힘들었던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며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한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보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상하이의 중심가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뭉클해졌다.

두 번째는 황포강 유람선을 타고 보았던 와이탄 지구의 야경이다. 유람선을 타고 상하이의 상징인 와이탄 지구를 구경하다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높은 빌딩과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물에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모습을 보며, 상하이라는 도시가 정말 멋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상하이의 또 다른 상징인 ‘동방명주’가 보였다. 낮에 보았던 ‘동방명주’와 밤이 되어 여러 색으로 바뀌며 반짝거리는 ‘동방명주’는 마치 다른 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동방명주’는 높이 486m의 탑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상하이의 월스트리트인 푸동 금융구에 위치하고 있는 방송 수신탑 동방명주에 의해 도시 전체가 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보기는 좋았지만, 엄청난 양의 전력이 밤마다 소모되는 모습이 마음 한편으론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인 세 번째는 상하이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주가각이다. 주가각은 마을 사이사이로 물이 흐르는 운하와 옛 모습을 간직한 가옥들로 마치 옛날 중국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자 일행이 주가각에 가기 전날 밤에 마침 비가 와서, 아침에 간 주가각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안개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서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지나갈 때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운하에는 여러 개의 돌다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방생교’는 직접 걸어서 건너보았다. ‘방생교’란 이름은 말 그대로 다리를 건설한 성조 스님이 다리 아래에서는 방생만 하고 절대 물고기를 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나라 때 설립되었다는 대청우체국에도 가보았다. 오래된 우체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곳 주가각은 가장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라면 역시 주가각을 선택할 것이다.

상하이는 부산과 같이 개항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와이탄 지구도 예전 19세기 후반 열강들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근거지로 삼았던 조계지(영국, 프랑스등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았던 외국인 거주지)라고 한다. 상하이는 베이징에 비하면 오래된 문화재나 문화유산은 별로 없지만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답게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상해 역시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한다. 기자도 주가각에서 걸인들을 여러 명 보았다. 이처럼 화려한 와이탄의 야경 뒤에는 수많은 걸인들이 있다고 하니, 낙오자 없이 다 함께 발전하고 잘 사는 사회는 역시 힘든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상하이는 바다(海)로 나아간다(上)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상하이 여행을 마치고 보니 중국인들이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살 때는 ‘중국산’이라고 적혀 있는 제품을 보면 은근히 무시하곤 했었는데,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직접 눈으로 보니 우리나라가 더 긴장하고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지금까지 했던 가족여행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여행을 통해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되었고 각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더욱 뜻깊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