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 기자 (광운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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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인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퀴리 부인의 원래 이름은 마리아스쿼도프스카 퀴리라고 한다. 그녀는 교육자의 딸로 바르샤바(지금의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공부한 뒤,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마리 퀴리로 이름을 바꾸고 소르본 대학교에 들어가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땄다. 퀴리 부인은 22살에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한 뒤,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연구한 끝에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해냈다. 그 결과,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남편 피에르와 공동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피에르가 마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하지만 퀴리는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연구해서 또 한 번 노벨 화학상을 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라듐 같은 방사선 물질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미용 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게 되었다. 퀴리 부인 자신도 방사선에 너무 많이 노출된 나머지 1934년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내가 퀴리 부인을 존경하는 이유는 최초의 여성 과학자라는 점과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모두 탔다는 점, 그리고 노벨상을 2번이나 탔다는 점 등이다. 퀴리 부인은 그 시대의 차별과 고정관념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탄 인물이다.
내가 퀴리 부인이었다면 차별 속에서 계속 방황하다가 그다지 유명한 과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 같은데, 퀴리 부인은 남편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여자가 차별 받는 세상에서도 자신의 연구를 열심히 해내 노벨상을 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존경스럽다.
조은서 기자 (광운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