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개

김시연보정초등학교

기자소개

그 어떠한 무기보다 강한 것은 바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은 몇 십만 대군의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있고, 인생을 좌우 할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함을 지닌 것이 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단편소설을 쓰는 것은 제 취미이고, 위에서 설명한 것 과 같이 학교에서 기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제 꿈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 동물에 대해 연구하는 동물학자가 되어 동물의 신비를 글로 써 다른이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가 쓴 동물의 신비에 관한 글을 읽고, 동물, 그리고 모든 생명의 중요성을 알려 동물학대를 조금이나마 막고자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위대한 능력을 가진 글을 이용한다면 끔찍한 동물학대가 사라지고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가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꿈을 기자활동을 통해 더 나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문소개

이제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인 6학년으로 특별한 추억만들기를 시작한 신문만들기가 꿈을 이루게 한 보물지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계획과 도전으로 성장되어간 나의 모습들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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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연 기자 (보정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37 / 조회수 : 337
정조의 꿈을 품은 수원화성

누군가가 나에게, “조선시대의 가장 훌륭한 왕 3명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기자는 망설임 없이 ‘세종대왕, 영조, 정조’라고 답할 것입니다. 12월 23일에 취재를 하고 온 수원화성 박물관은, 그 세 번째 왕인 정조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들과 그 우수성을 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의 1층에는 기획전시실, 그리고 2층에는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이 위치해있습니다. 기자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성축성실입니다. 화성축성실은 화성의 축성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여러 가지 유물들과 복원 모형들을 통해 화성의 축성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길고 긴 ‘화성 축성 여행’은 황금갑옷을 입고 있는 정조의 화성행차로 시작됩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22대 왕이 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예술과 학문, 농업이나 상업까지 발전시켜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화성 건설은 이 정조의 업적 중 가장 주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여 농업,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되어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화성은 그냥 신도시가 아닌, ‘정조의 꿈을 품고 있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조는 화성 건설을 위한 계획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하고 뛰어난 성들을 어떻게 쌓아졌는지에 대해 깊이 연구해볼 것을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튼튼한 성을 쌓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가져왔다고 하니 그 계획성과 꼼꼼함, 그리고 꼭 좋은 신도시를 건설하여 백성들을 돕겠다는 정조의 의지가 전해지는 것 같아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그 결과, 화성은 조선시대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여 만든 성이라는 평가에 맞게, 건설에 쓰인 기구들부터 과학적인 우수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 모양새부터 심상치 않은 ‘녹로’와 ‘거중기’가 그 대표적인 예 입니다.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이동하기 위해 사용된 녹로는 고정도르래를 이용하였고, 거중기는 고정도르래와 이동도르래를 모두 이용한 ‘복합도르래’의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10년의 예상 건축기간보다 훨씬 빠르게 완공된 화성에서 백성들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으며 기쁘게 생활하는 모습을 표현한 모형들을 마지막으로 화성축성실의 전시는 막을 내립니다. 그중 기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것은 수원화성의 농토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정조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고, 그 농토에서 농사를 짓는 대가로 농민들이 내는 세금을 군사들의 봉급을 주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원화성의 백성들은 군사들의 봉급을 주기 위해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고, 농민들은 과학적인 농사법과 개간한 농토에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백성과 나라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화성은 참 좋은 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정조를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과 지혜가 합쳐진 좋은 정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옆에 이어져있는 화성문화실이었습니다. 화성문화실은 화성행차, 화성에서 사용된 무기 등 화성이 완공된 후의 활용 모습과 방법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최첨단 무기를 갖추고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도시가 된 화성을 보니 ‘정말 성공적으로 세운 도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화성은 농업, 상업을 발달시켰을 뿐 아니라 군사력까지 뛰어났으니 참 완벽한 도시 같았습니다. 정조의 8일간의 화성행차를 상상해보며, 완공된 위대하고 아름다운 화성을 둘러보는 정조의 표정을 생각하니 기자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2층 관람을 모두 마치고, 1층에 있는 기획전시실에서 둘러본 곳은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대목장의 세계’라는 전시였습니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목수들의 일과 목조 건축을 하는 과정, 한국, 중국, 일본, 유럽의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목수들의 도구와 나무 손질법, 건축과정 등에 쓰인 실제 도구, 나무 등을 동영상과 함께 실감나게 비교해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수원화성을 지을 때의 목수들에 대한 부분도 전시를 통해 알리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장인들이 보다 더 튼튼하고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겨울에는 털모자를 나눠주고 격려까지 했다고 하니, 장인들을 귀하게 여겼던 정조의 뜻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니, 문득 조선 최고의 건축물로 손꼽히는 화성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헤치며 간 곳은 박물관 주변에 남아있는 화성의 자취들이었습니다. 박물관 주변에는 화성 행국, 팔달문, 동장대, 동북공심돈 등 미복원 시설물 7개소를 제외한 성의 시설물 41개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이라는 도시에서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멋진 건축물, 수원화성은 마치 조선의 궁궐들을 지키는 늠름한 해태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정조의 꿈을 품은 화성 관람은 끝이 났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답고 과학적인 건축 구조, 그리고 백성들을 아끼는 정조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더더욱 뜻 깊은 관람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 둘러보지 못한 넓은 화성 전체를 마저 다 돌아보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항상 행복이 가득했을 화성, 그 행복이 지금의 화성에도 영원히 남아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