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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솔서울금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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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금화초등학교에 다니며 책 읽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합니다.좋아 하는 과목은 영어이고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입니다. 존경하는 분으로는 아빠, 엄마, 외할머니, 제갈공명, 저를 가르쳐주시는 담임선생님(정회옥,곽은선,김혜숙,신현정,윤인경)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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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세계 여러나라가 같이 더불어 살며 우리 국민을 지켜주는 사람들께 고마움을 표시하자는 뜻입니다. 북한과 통일 되면 운동회도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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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솔 기자 (서울금화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70 / 조회수 : 945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야할 곳

2012년 93주년 3.1절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23일, 푸른누리 기자단 20명은 파란 모자를 쓰고 서대문 형무소에 모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위치에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에 일본에 맞서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들이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려 싸웠던 사람들이 옥고를 치르던 살아있는 현장이다. 그 분들의 뜨거운 나라사랑의 기운과 힘들었을 시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전시관, 중앙사, 12옥사, 11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통곡의 미루나무, 사형장, 여성옥사, 격벽장등으로 이루어 져있다. 처음 우리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을 들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은 근대적 불평등조약이며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강점하기 시작하였다. 감옥이 필요했던 일본은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서대문형무소를 개소하였다.

1919년부터 1930년까지 전국에 28개의 형무소가 세워졌다. 두 번째로 서대문형무소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지하고문실은 일제강점기 보안과청사의 지하 취조실이다. 독립운동가를 취조 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문을 했는지 그 고문의 방법(고춧가루를 물에 풀어 콧구멍에 넣어 폐에 들어가게 하기, 상자에 송곳을 박은 후 사람을 안에 가두고 상자 흔들기, 주로 여성에게는 책상에 손을 묶은 후 손톱 밑을 찌르기, 전기 고문) 등을 보았다. 직접 체험한 것은 관처럼 작은 옷장에 들어가 공포를 느꼈다. 옛날 무거운 수갑을 차보았고 사형할 때 머리에 씌우던 용수도 써보았다.

중앙사는 간수사무소와 수감자들의 의, 식, 주와 관련된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매월 국가 보훈처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 운동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옥사는 수감자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12옥사와 11옥사로 구분되어 있다, 12옥사는 옥사내부에 독방이 있으며 수감자들에게 위험을 알리려면 안에서 구멍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밀어 신호를 주던 타벽통보법을 사용하였다. 11옥사에는 관람객이 독방에 들어가는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아주 작은 구멍밖에 뚫려 있지 않아 무척 답답하였다.

공작사는 수감자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곳으로 각종 물품과 군수용품을 생산하던 곳이다. 수감자들이 만들었다던 벽돌, 밥그릇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추모비는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16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 푸른누리는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였다. 격벽장은 수감자 상호간에 대화를 방지하고 감시를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으로 사람들을 분리시킨 후 운동을 30분정도 하던 곳이다. 사형장은 사형을 집행하던 건물로 실질적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순국하셨다. 들어가 보니 큰 의자와 천으로 막혀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집행인들은 정문이 아닌 옆에 있는 조그만 문으로 출입하였다고 한다. 사형장 앞에는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다. 미루나무는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이 억울해서 나무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100년이 되었다고 하기엔 너무 작다. 나무도 많이 속상하고 억울한가 보다.

시구문은 독립운동가를 사형시킨 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시신을 몰래 공동묘지로 옮기던 200m정도 되는 비밀통로이다. 도슨트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순간 애국지사들의 혼령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여성옥사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있던 곳으로 현재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진 못했다. 유관순 열사가 이곳에서 순국하셨다. 취사장은 수감자들이 밥을 해 먹던 곳으로 1920년 지어졌다 1988년 철거 후 2010년 복원 되었다. 체험이 끝난 후 서대문형무소를 더 잘 알기 위한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Q : 열사와 의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A : 열사는 비폭력적으로 만세운동을 한 사람들이고, 의사는 총이나 칼 같은 무력으로 애국을 표현했던 사람들입니다.

Q : 사람들이 애국자가 될 수 있도록 충고가 있으신가요?

A : 서대문형무소를 통해 체험을 하고, 애국지사들이 얼마나 힘든 고통을 겪었는지 느끼면 저절로 애국심이 생길 것입니다.

Q : 선생님께서는 일본인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들며, 일본인들은 서대문형무소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합니까?
A : 감정은 가지지 않고 보며, 일본인들도 서대문형무소에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일본인들은 진실 된 역사를 생각하고 파악합니다.

Q : 수감된 사람들은 몇 명이며 순국자는 몇 명입니까?
A : 현재 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은 4만여 명이고, 순국자는 400여 명입니다. 그중 165명은 누구인지 밝혀져 있습니다.

Q : 감옥이 모자라면 감옥을 또 지었나요?
A : 전국에는 28개의 형무소가 있습니다. 그 형무소에 분포하여 수감하였습니다.

Q : 서대문형무소를 박물관 식으로 고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 무서운 형무소를 박물관으로 고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역사를 잘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Q : 서대문 형무소는 어린아이나 무서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끔찍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며 다가서기를 바라십니까?
A : 사람들이 무서워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마네킹이나 너무 실감나는 장면은 다 철거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를 역사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부를 때, 다른 나라와 운동경기를 하는 우리나라 선수를 목이 터져라 응원할 때, 우리나라 물건이 다른 나라에서 잘 팔린다고 할 때 나는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뜨거운 애국심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아픔과 희생을 몸으로 체험하며 또 한 번 다른 종류의 애국심을 가지고 돌아 왔다. 다가오는 3.1절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많은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 행사에 참여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