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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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 (서울홍파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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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해 만든 독립기념관

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해 있는 천안 독립 기념관은 반만년(약 5,000년)동안 지켜 왔던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조들을 알리고, 아이들에게 교육하려고 만든 곳이다.
때문에 독립기념관은 1910~1945년 즉 일제강점기를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총 7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립기념관은 민족전통관, 겨레의 시련, 나라 지키기, 겨레의 함성, 독립 전쟁관, 사회*문화 운동관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또 독립군들이 다녔던 학교를 체험 할 수 있는 ‘신흥무관 학교’라는 체험 장소도 있다.


독립군이란 나라를 위해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우신 분들이며, 신흥무관 학교라는 곳은 독립군들이 다닌 학교이다.


3.1.운동이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긴 후, 빼앗긴 주권을 찾기 위해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운동이다.

우리나라에 1879년부터 강제적으로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근세대로 변하며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나쁜 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1910년에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일본과 가장 먼저 맺은 조역은 강화도 앞바다에서 맺은 강화도 조약이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나라가 무엇을 하여도 일본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억지 약속을 맺었다. 이것이 을산늑약 이다. 이것은 조약이 아닌 늑약이라 한다.

군대가 새로 들어오면서 군대에도 차별이 생겼다. 열기군 이라, 우리나라의 구식 군대를 새롭게 만든 것과 구식군대가 있었다.


이때는 구식 군대인 들은 1년 3개월마다 월급을 받긴 받았지만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 급기야 쌀로 월급을 받을 때는 먹지 못하는 것과 섞어서 주었다고 한다. 월급이나 대우가 열기 군과 많이 차이가나자, 임오년(1882년)에는 급기야 구식군인들이 열기군들을 죽이고, 그들을 훈련시킨 일본인들까지 죽이는 일이 생겨났다.


사진이 들어오고 초반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물론, 사진관의 근처에도 못 가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발형이 도입되면서부터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차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비용도 매우 비쌌고, 특정하게 정해진 길 없어 도로로 달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전차는 한때 ‘악마의 차’ 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는 독립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 중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운 독립군들은 만주나 시베리아 쪽으로 나아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 당시 그 쪽으로 간 이유는 우리나라는 이미 너무 강한 일본의 탄압을 받고 있었고, 그 탄압을 피해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만주나 시베리아 쪽으로 나아가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독립군들은 독립운동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부도 하였다. 훗날 후손들이 독립된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가려면 자신들이 많이 배워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독립군들도 학교를 다녔다. 독립군 학교이다. 신흥무관학교도 독립군학교인데, 일본의 탄압을 피하여 추가가, 합니하, 고산자 이대로 학교를 옮겨가며 운영했다. 학교 운영자는 이회영, 이상룡, 김동삼 이 세 분이다.

독립군 학교라 시설이 좋았을 것 같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하루 밥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먹을 것이 없어 좀먹은 좁쌀로 지은 밥 한 숟가락, 콩자반 1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빈약한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정신이다. 하지만 과연 독립운동에 몇 명이나 참여했을까?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약 2,000만 명이었다.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2,000만명 중 20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그 당시의 증언자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불이 나기도하여 사람 타는 냄새도 맡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임소연 기자 (서울홍파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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