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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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연 (목감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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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함성이 들리는 곳, ‘독립기념관’

지난 2월 25일 청와대 어린이 기자단은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현장탐방을 다녀왔다. 설래는 마음과 많이 배우고 오겠다는 다짐을 가득 안고 독립기념관에 들어섰다.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킨 역사를 연구, 전시 교육하는 곳이다.독립기념관을 세운 이유는 앞으로 다시는 일제강점기 때 같은, 다른나라에게서 우리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때의 일을 알려주고, 기념하기 위해 국민들이 기금을 내서 만든 곳이다.

우리는 제 2,3,4 전시관을 관람하였다. 제 2전시관(겨레의 시련)에는 다른나라와 교류의 문을 열고 일제강점기를 당하기 까지의 과정이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1876년 조선과 일본사이에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게만 더욱 큰 이익이 되었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은 우리나라가 나라를 빼앗긴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렇게 우리나라와 교류를 하다가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으므로 일본이 조선을 지켜주고, 다스려주겠다며 이 내용의 조약에 서명하라고 하였다.하지만 조선사람 그 누구도 서명하지 않자 무력으로 서명을 하게했다.그후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다.1950년에 생긴 이 조약은 을사늑약 이란 조약이다.

하지만 문화 교류를 해서 우리가 무조건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전화가 생기고, 비록 청량리에서 서대문까지였지만 전차도 생겼다. 하지만 그당시 사람들은 전차를 악마의 차라고도 불렸다. 그 이유는 사고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치과, 전등, 사진관, 그리고 서양의학이 들어왔다. 서양의학은 한방보다 치료효과가 더 빨라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최초로 세운 서양의학병원이 바로 신천 세브란스 병원이다.


제 3전시관 (나라지키기)에는 애국선열들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펼친 의병운동과 국제 보상운동 등 여러 독립운동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제 4전시관 (겨레의 함성)에는 1919년 3월1일 민족 최대의 항일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독립열양을 온 세계에 보여준 3.1운동때 우리 국민이 그때 손에 들고 "대한 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태극기와, 독립운동에 관련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모두 관람하고 나서 나는 독립군들의 활동에 대해서 잘 알수 있어서 뿌듯했다.다음엔 도토리 훈장이라는 입체영상을 보았다. 4D 입체영상과 진동의자, 바람효과 등 최신 연출 기법으로 상영되는 최첨단 영상관이다. 스크린은 우리집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 이상이였다. 그리고 때에 맞추어 총이 발사될 때라든지엔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로 오갈 때에는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입체라 훨씬 생동감이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며 영상을 보니 더 재미있고 내 머리속에 그들의 생활이 더 똑똑히 남아있어 좋다.

재미있게 도토리 훈장을 상영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정해빈이라는 친구도 사겼다. 휴식시간에 해빈이랑 같이 다니며 이야기도 하고 돌아다녔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독립군체험학교에 갔다. 독립군 체험학교는 독립군 양성의 산실인 신흥무관학교를 테마로 한 체험학습장이다. 신흥무관학교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회영, 김동삼, 이상룡선생님, 그리고 지청천 장군이다. 독립군이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우셨던 분이시다. 대표적인 유명한 선생님들로는 윤봉길의사, 김좌진 장군, 의병 안중근 등등이 있다. 독립군들은 만주, 시베리아, 중국 이런 지역으로 옮겨다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엔 이미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심하고 계속됐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첫 전쟁이였던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쟁은 우리나라의 승리였다.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장군이 이끈 6일동안10여차례동안 일어난 전투인데 이 모든 전투를 통틀어서 청산리 대첩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독립군과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독립군 막사를 만들었다. 독립군 막사는 독립군들이 살면서 공부하고 훈련했던 곳을 축소해서 조립할 수 있고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독립군 막사을 만들다가 보드게임을 하는 8명중 뽑혀서 보드게임을 하러 갔다. 이 보드게임은 독립군에 관한 보드게임이다. 규칙은 블루마블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블루마블은 땅을 사는 부분이 대신 독립군에 관한 퀴즈를 푸는 것이다.나는 평소에 엄청 싫어하던 역사로 이렇게 재미있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보드게임을 마치고 독립군들의 의식주에 대해 공부했다. 독립군들은 정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었다. 이곳저곳으로 학교를 옮겨 다니며 돈도 부족해서 직접 농사지어 살았다. 그리고 오전에는 역사 지리 같은 공부를 했고 오후에는 훈련이나 농사를 지었다. 옷은 4계절 내내 재료가 같았고, 음식은 양도 적은데다 좀 먹은 좁쌀로 지어먹었다. 그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았었다.

학교가 있는 곳의 특징은 주변에 산이있고 강이있고 나무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곳이여야 했다. 나는 독립군들이 힘들게 나라를 지키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난해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앞으로라도 독립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가지며 우리나라를 더 사랑해야겠다.


독립기념관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독립군 배지를 줬다. 너무 소중했다. 이 탐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현장 탐방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친절하고 쉬운 설명을 해주신 독립기념관 선생님들이랑 우리를 인솔해 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를 되찾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과 우리나라가 있어 내가 존중받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중받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고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느꼈다.

최가연 기자 (목감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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