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서 기자 (서울봉현초등학교 / 4학년)
추천 : 59 / 조회수 : 1852
6.25전쟁 당시 두 번이나 피난을 가셨다는 친할머니와, 그 당시 부산에 살고 계셨던 외증조할머니를 인터뷰하였다. 먼저 나의 친할머니이신 ‘윤광옥 할머니’와의 인터뷰이다.
Q. 할머니는 몇 년도에 태어나셨나요?
A. 나는 1942년에 태어났단다.
Q. 사시던 곳은 어디였나요?
A. 지금의 3.8선 분계선 북쪽에 살았지.
Q.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이는 몇 살이셨나요?
A.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1950년이니까 8살쯤 되었지.
Q. 할머니는 언제 피난을 오셨고 왜 북한에 안계시고 남한으로 피난을 오셨나요?
A. 북한은 공산주의라서 자유가 없었고 남한은 민주주의라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였지. 그때 할머니의 아빠, 윤서의 증조할아버지가 북한에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남한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셨고 해방이 되고 어수선할 때 아마 1945년인가 내가 3살 때 피난을 결정하셔서 1차로 피난을 왔어. 집과 재산 모든 것을 북한에 두고 지금의 북한강을 밤에 몰래 배를 빌려서 타고 피난을 왔지. 그 당시에는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남한으로 내려오기도 아주 힘들었어.
Q. 피난을 와서 어디에서 살았나요?
A. 지금의 독립문 근처인 서울에서 살았어. 잘 살고 있다가 내 나이 8살 때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 중국이 대대적으로 쳐들어 와서 북한과 힘을 합해 남한으로 쳐들어오고 비행기로 폭격을 해대고 먹을 것, 중요한 것들을 다 불로 태웠단다.
Q. 그래도 그 곳에서 계속 살았나요? 서울에서 살았으면 위험했을 텐데요,
A. 서울에서 살 수가 없었지. 그래서 우리 가족은 2차로 대구로 피난을 갔단다. 그 때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걸어서 가거나 달구지를 타고 산속이나 농촌으로 피난을 갔단다. 우리 가족은 기차를 타고 갔어.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차 안에 타지 못하고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차를 탄 사람도 있었단다. 기차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정말 힘들게 대구로 갔단다.
Q. 전쟁 났을 당시에 무섭거나 놀랐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A. 그때에는 나이가 8살밖에 되지 않아서 죽은 사람의 시체가 팽창된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어. 내 아버지가 다리에 총을 맞으셨지. 또한 먹지도 못하고 잘 곳도 없어서 피난 가서는 움막에서 잤어. 움막은 땅 속에 들어갈 수 있게 구멍을 파두고 위를 흙으로 덮는 거란다. 밖보다 따뜻해서 일곱 식구가 그 움막에서 살았지. 어릴 때여서 무섭고 배고프고 옷도 없고 양말도 없이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다녀서 발이 부었어. 그래서 추웠고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렸어. 동상에 걸리면 추운 곳에서 감각이 없다가 따뜻한 곳에 오면 간지러웠단다. 그래서 긁어서 상처도 나고... 지금 난 상처는 상처도 아니야. 그곳에서 힘들게라도 살았는데 움막이 무너져서 다른 먼 곳으로 이사를 갔어. 먹을 것은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 찌꺼기를 먹고 살았지. 슬픈 것도 잘 몰랐단다. 지금은 세상이 굉장히 좋은 거야.
나의 외증조할머니 ‘이정호 할머니’는 올해 90세이고, 엄마의 본가인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쓰고, 전화 통화가 힘들어서 엄마가 대신 인터뷰해주셨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외증조할머니는 28세이셨고, 외증조할아버지는 부산에서 연탄공장을 운영해서 부산에 있었다고 한다. 외증조할머니는 16살에 시집을 갔고, 그 당시 바깥일은 남자들이 모두 하던 시절이라 할머니는 바깥일은 거의 모르셨다고 한다.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짐 싸라.”하면 미숫가루와 음식이 든 보따리 쌌고, “됐다.”하면 짐을 풀었다고 했다. 6.25 당시를 생각하면 짐을 여러 번 싸고 풀고 한 기억이 난다고 하신다.
외증조할머니는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피난은 안갔지만, 연탄공장에 사람들이 와서 생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좁고 지저분한 공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먹을 것이 귀해서 미숫가루를 타서 나눠먹고, 고향 사람들이 피난 왔을 때는 집에서 같이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신다.
두 할머니께서 인터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할머니들의 전쟁이야기를 들으며, 피난을 가본 분도, 피난을 온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신 분도 모두 다 힘이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함께 전쟁기념관에서 보고 책에서 본 것보다 직접 할머니들에게 전쟁이야기를 들으니 전쟁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세계에 다른 나라에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이윤서 기자 (서울봉현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