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진 독자 (서울마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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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서운함이 비로 부슬부슬 내려주는 날. ‘환영 청와대 어린이 기자단’ 글씨를 보고, 버스가 흔들리 때마다 내 가슴도 같이 쿵쿵쿵 박자를 맞춰 주었다.
우리가 취재를 위해 발을 딛은 곳은 두산동아 인쇄공장이었다. 이날 탐방 코스는 옵셋실→윤전실→제본실→제판실→유물전시관의 순서로 정해져 있었다.
옵셋실과 윤전실에서는 매엽인쇄기를 보았는데 1시간 동안 무려 1만장을 인쇄하고 있었다. 매엽인쇄기는 낱장인쇄기란 뜻이다. 옵셋실에서 윤전실까지는 매우 가까웠는데 윤전실에서는 1시간동안 무려 45,000장을 인쇄하고 있었다. 거대한 두루마리 용지가 우리가 쓰는 책으로 변신하고 있었는데 그 대단한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또한 그곳에서 사용하는 색은 먹, 청, 적, 황 4가지 색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그 네가지의 색채가 우리 주변의 모든 색채로 변했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수만가지의 인쇄물들을 사람이 직접 쌓아야 한다는 것은 윤전실에서의 가장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힘들지 않은 일이 결코 없다는 진리가 마음에 이어 뼛속까지 파고 들었다.
그 다음으로 우리를 맞이한 곳은 제본실이었다. 속지의 순서맞춤, 삐뚤빼뚤한 속지의 끝 일치, 속지의 포장 및 매끄러움를 잇는 과정을 수행하면 중심과정은 일단락되지만 그것에 이어 기계는 여전히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책의 일정수량을 노끈으로 묶는 작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쇄물을 필요로 하는 고객에게 보내기 위한 선행작업인 셈이다.
제판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요청된 원고를 인쇄가능한 인쇄판으로 만들어 출력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인쇄판을 만드는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파랑색도, 언니가 좋아하는 빨강색도 아닌노랑색 형광등만이 쓰였다. 작업시 꼭 필요한 빛을 내뿜어주는 형광등에서 많은 양의 적외선이 출몰하게 되는데 그 적외선의 풍요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인쇄판을 못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 그 이유가 있었다. 결국 제판실에서 그 갖가지 어여쁜 색상들 중 ‘노랑’이 선택된 이유는 노랑이 적외선을 가장 적게 내보내는 색인 덕택이었다.
대망의 마지막 코스는 유물전시관이었다. 전시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와 아빠가 어렸을 때 쓰셨을 법한 옛날 교과서였다. 내가 차마 존재하지 못했던 과거라는 이름의 ‘역사’ 속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체험한 과거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했다. 인쇄물들의 어머니인 ‘인쇄술’의 발달은 불교 경전을 전파시키려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종교라는 작은 카테고리에서 출발한 인쇄술은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증명하듯 세계최초의 활판인쇄술인 금속활자는 대한민국에서 탄생되었고 그로부터 자그마치 백여년이 지나간 이후에야 독일의 학자인 구텐베르크가 42행 성서를 금속활자로 인쇄하는 것에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로 찍은 최초의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의 원본은 19세기 말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조선에 근무했던 꼴랭 드플랑시의 구입이 연유가 되어 비록 지금은 이 곳이 아닌 저곳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고 누가 뭐라든 직지심체요절은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두산동아 인쇄공장을 탐방하면서 말그대로 즐거웠다. 2002년 이후 내 속에서 실종된 것만 같았던 애국심이거세게 불타올라 그로 인한 뜨거운 마음은 탐방을 끝내고 99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다. 999시간이 차오르는 시간까지도 인쇄실 곳곳은 내 우뇌 상층부에 위치한 신효진표 인쇄실에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책 한 권, 아니 작은 광고지 한 장까지도 소홀히 대하지 못한다. 그것은 책이기 이전에 인쇄물이었고, 인쇄물이기 이전에 나의 친구니까.
신효진 독자 (서울마천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