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나 독자 (분당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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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은 푸른누리 기자들과 퓰리처상 사진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취재하기 하루 전날부터 준비를 마친 나는 취재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첫 취재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집결 장소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로비. 부모님과 함께 취재장소로 달려갈 때의 기분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드디어 푸른누리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주의사항 및 설명을 듣고, 기자들은 모두 취재에 나섰습니다.
퓰리처상이란 보도, 문학, 음악 등의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여, 상을 주는 것으로, 1917년에 창설되었습니다.
1940~50년대의 작품들은 주로 전쟁에 관련된 사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 인터뷰를 할 맥스 데스포 종군 기자의 사진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명은 ‘다리에 매달린 피난민들’로 1951년의 수상 작품입니다. 그리고 곧 195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사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참혹한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기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980년대의 작품들 중 그 당시의 사회적인 문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노숙자’라는 작품입니다. 그 사진을 찍은 기자는 실제로 노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드디어 2000년대로 들어섰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폭발하고 있는 장면의 사진, ‘세계무역센터의 공격’에서는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거리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사진기자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해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어서, 함부로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군인이 기자를 총으로 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기자에게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터뷰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맥스 데스포 할아버지께서는 유머감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처음 우리 기자단의 모습을 보시고는, 모자가 예쁘셨는지 할아버지의 모자와 다른 기자의 모자를 바꾸어 쓰셨습니다. 긴장을 하고 있었던 기자들은 인터뷰를 시작하였습니다.
기자: 사진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있나요?
맥스 데스포 :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번째는, 카메라 앞의 상황이 담겨있고, 두번째로는 사진을 찍는 기자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다른 기자의 생각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기자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고, 찍는 사진이 사실이어야 합니다.
기자: 왜 사진기자라는 꿈을 가지시게 되었나요?
맥스 데스포: 대학교 시절에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서 얻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형의 도움으로 AP통신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진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기자: 어떻게 6.25 전쟁의 모습을 사진에 담게 되었나요?
맥스 데스포: 6.25 전쟁 상황을 찍으러 간다는 소식에 자발적으로 원해서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기자: 어떻게 대동강 철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요?
맥스 데스포: 물론 아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3가지가 있었습니다. 일단, 몹시 추웠고, 카메라가 수동이었으며, 적군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기자: 6.25 전쟁 60주년을 맞이하였는데, 옛날과 오늘날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맥스 데스포: 6.25 전쟁 당시에는 많은 지역들이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10년 뒤에 한국에 다시 와 보니 빌딩도 많고, 사람들도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맥스 데스포 종군 기자와 단체사진을 찍고, 푸른누리 기자단은 ‘신기한 사진 체험전’에 가서 체험을 하고 왔습니다. 팀별로 나누어서 하였는데, 시간이 없어서 각 팀 당 몇 가지 체험만 하였습니다.
맨 처음 했던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옛날 카메라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신기하였고, 직접 나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다만 오랫 동안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죄송하였습니다.
이유나 독자 (분당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