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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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훈 (서울을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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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치신 유관순 누나

3월 1일은 일제시대 우리민족이 일본에 맞써 평화적으로 독립을 위하여 만세운동을 한 날입니다. 3.1절이 되면 많은 독립운동가 중에 유관순 누나가 생각납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의 독립만세를 외치시다가 옥중에서 목숨을 잃으신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나는 유관순 누나를 생각하며 모교인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이화자여자고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학교는 봄방학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유관순 누나의 동상( 위 사진) 과 빨래터(아래 오른쪽 사진) 그리고 기념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관순 누나께서 빨래하던 빨래터는 유리 뚜껑에 께지고 지져분해서 잘 보존되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관순 누나의 동상 뒤로는 누나의 탄생과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신 일들이 세겨져 있었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1902년 12월 17일 충청남도 천안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고 싶었으나 집안 살이가 어려워서 학교 다니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1916년에 사부인이라는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셔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1919년, 유관순 누나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가하셨습니다. 일본이 이화학당을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교회와 청신학교를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도 만세운동을 계획하셨습니다. 마을 지도자를과 함께 음력 3월 1일 ‘아오내장날’에 수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선창하며 만세운동을 하셨습니다.


이 만세운동으로 잔인한 일본헌병에게 누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피살당하고 유관순 누나는 일본에게 잡혀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으며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셨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시고 결국 1920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셨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무지막지한 일본경찰의 총과 칼과 고문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서우셨을 텐데 정말 우리나라를 사랑하시고 독립을 원하셔서 일본에 대항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관순 누나를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나라를 사랑해서 유관순 누나의 원수를 갚아주고 싶습니다.


송경훈 기자 (서울을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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