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요한 기자 (서울은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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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향연이 가득한 6월! 푸르른 오월을 지나, 초록이 아름다운 현충원이 이날은 가슴까지 시렸다. 현충원 근처에 살아서 자주 가는 산책로가 이날따라 내 발을 굳게 잡고 마음을 기울여 보라 했다. 부모님이 6월에는 현충원을 방문하여 순국선열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6.25, 동족상잔의 아픔이 있어 가슴 뭉클한 6월의 현충원은 나에게 포근한 산책의 공간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감동의 영상이 마음속에 펼쳐졌다.
서울국립현충원은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해있다. 50% 이상이 6.25전쟁에서 희생된 국군용사들이지만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령이 재정립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되어 안장되었다. 또한 2005년 7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 제7649호, 시행 2006.1.30’에 의거,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즉,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대부분의 애국자들이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다.
이날은 현충문을 지나 현충탑으로 들어섰다. 웅장한 현충탑 안에는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000여 호국용사들의 위패가 가득히 모셔져 있다. 이곳의 주인공은 거의 6·25전쟁 전사자들이다. 이 분들은 대한민국 어느 산하 어느 골짜기에 잠들어 계실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구부린 몸으로 아직까지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유해를 찾지 못해 현충원에 오시지 못한 분들에게 초등학생인 저는 편지와 마음의 꽃을 드리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되어 다시 찾을 내년 6월에는 진짜 꽃을 드릴게요.”
초야에 묻혀 이름 잃은 국군아저씨께
이제 봄입니다. 한국전쟁으로 돌아가신 국군아저씨도 들리시나요?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 바람에 꽃의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말이에요. 제게는 할아버지시겠지만 용감했던 모습을 그리며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어요.
저는 서울에 사는 요한이입니다. 저희 집은 현충원에서 가까워요. 그래서 부모님과 걸어서 자주 방문해요. 현충원에는 많은 국군아저씨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헌화를 하기도 하고 묘지를 돌보기도 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싸우시다가 전사하신 분들이 모두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것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유해가 발굴되고 신원이 확인되신 분들만 현충원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저는 아직 그렇게 헌신하신 분들을 위해 꽃 한 번도 갖다드리지 못했어요.
현충원에 계시지 않은 아저씨! 무덤도 없고 묘비도 없이 어느 산, 어느 들에 잠드셨을 아저씨! 나라를 구하고도 아직 현충원에 오시지 못한 것 때문에 저는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이렇게 평안하고 멋지게 살고 있는 것이 모두 아저씨들 덕분인 걸 저는 알아요. 그래서 오늘 저는 아저씨께 진짜 꽃은 못 드려도 아름다운 마음의 꽃을 드리려고 해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저에게 우리나라를 위해 온 몸을 바친 호국선열 분들과 국가유공자 분들께 감사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당당하게 태극기를 걸고 당당하게 애국가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아저씨와 같은 분들 덕분이라고 배웠어요.
전쟁으로 인하여 이산가족이 생기고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에요. 이런 일들을 뒤로 하고 당당히 우리나라를 위해 전사하셨던 아저씨! 지금의 발전한 우리나라를 하늘나라에서 보신다면 정말 가슴 뿌듯하실 거예요. 이름 없이 생명을 이 땅에 심으신 귀한 마음 하나하나가 물줄기 되어 서로 만나 강이 되고, 강이 서로 힘을 모아 바다를 이루듯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저씨들이 만든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저희 학교는 월요일 마다 아침조회를 합니다. 그 시간에는 먼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 후 애국가를 부릅니다. 저는 애국가를 부를 때 감동 때문에 그런지 눈물이 핑 도는 때도 있는데, 저의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자랑인 애국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애국가가 탄생한 것인데 말입니다. 아저씨와 같은 분들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현재 나라 잃은 피난민처럼 떠돌이의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한 사람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저와 같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초등학생은 어떻게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계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저는 저희와 같은 어린이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더욱 나은, 더욱 멋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아요.
아저씨! 비록 현충원에는 아직 묻히시지 못하셨지만 아저씨의 귀한 애국정신을 현충원에 모셔드립니다. 그리고 제 마음의 꽃을 드리고 갈게요. 지금 제가 미래에 대한 밝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사랑합니다!
2012년 6월의 토요일
서울은로초등학교 6학년 박요한 올림
박요한 기자 (서울은로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