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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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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서 기자 (서울잠현초등학교 / 4학년)

추천 : 75 / 조회수 :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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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은 한 치 앞도 모르겠어 1

정연이 이야기

정연이는 무거운 학원 가방을 맨 채 떠나려는 학원 차를 타려고 힘껏 달렸습니다. 가방이 어깨에 들썩대서 잘 뛸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줄을 매달아 크로스로 맨 핸드폰이 계속 허벅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정연이는 학원 가방이 자기 몸무게의 4분의 1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년 육상 선수이자 6학년 언니보다 더 빠른 은하가 먼저 뛰어가서 기사 아저씨 보고 ‘정연이 좀 기다려 주세요!’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도 없이 해봤습니다. 정연이의 가방 안에는 지금 가는 수학 학원 교과서 말고도 어제 다녀와 놓고 안 꺼낸 발레 슈즈랑 이따 학원 끝나고 가야 하는 영어 학원 교재, 그리고 끝나면 배가 고프니까 뭘 좀 사먹을 수 있는 용돈이 들어있는 지갑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연이의 눈앞에서 학원 차량이 매캐한 매연 속에 훌쩍대는 정연이만 남겨놓고 쌩 지나가버렸습니다.

‘인정이는 공부 안 하던데,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예린이는 공부 안 해도 만날 올백인 것 같던데...’

정연이는 맞벌이라서 자기를 챙겨 줄 수 없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은하 이야기

오늘도 또 그 지겨운 달리기 연습입니다. 공부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울 엄마의 똥고집 때문에 아빠도 엄마한테 꼼짝 못합니다. 엄마는 정말, 오빠한테는 학원비를 다 쏟아 붓고서 나는 오빠 때문에 돈 다 썼다며 은하는 아마 공부 못 할 거라고 나한텐 문제집 한 권조차도 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맨날 아침저녁으로 달리기 연습만 합니다. 1학기는 단거리 빨리 달리기, 2학기 땐 오래 달리기, 방학 땐 둘 다 연습하고 있습니다.

학년이 시작되기 대략 1주일 전부터 엄마가 몰두하는 것은 오빠의 공부 계획표랑 은하의 달리기 연습 계획표 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은하는 방학이 너무 싫습니다. 방학이라고 어디 놀러 가지도 않는데, 은하도 정연이처럼 학원 차 놓쳐가면서라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린이처럼 공부를 안 해도 잘하는 건 기대도 안 합니다. 달리기만 잘하면 뭐해, 은하는 육상 선수가 되고 싶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모두 은하가 달리기 실력을 타고난 줄로만, 그리고 은하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예린이 이야기

예린이는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그러고는 칠판을 째려보고 자기를 추천한 민하 자리를 노려보았습니다.

"절친이라는 게, 내가 임원 되는 것 싫어하는 것 알고도 허구한 날 추천해놓고서 미처 생각 못했다고 하고 있어."

예린이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중얼거렸습니다. 예린이도 2학년 때는 임원이 너무나 되고 싶었습니다. 회장이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탐났는지, 아직도 회장 자리를 매년 노리는 애들이 5학년이 된 예린이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린이네 학교는 임원선거 때 연설을 하지 않고 평소 행동을 보고 투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추천이 되면 선택권 없이 그냥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는 예린이는 매번 회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학년 때 맛을 보고 민하한테 예린이가 자긴 임원 자리가 너무 싫다고 그랬건만 매번 예린이를 추천하는 건 민하였습니다. 이번엔 제발 추천 좀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1학기 땐 임원 선거에 등록이 안 되었지만, 2학기 땐 민하 때문에 또 회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애들도 공부가 다인 게 아닌 건 알 텐데, 정말 미웠습니다. 회장이 돼서 지금 이렇게 일찍 등교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린이는 수첩을 꺼내 엄마가 훈련시킨 꺾어 쓰기로 글씨를 휘갈겨 썼습니다. 최대한 휘갈겨 쓴 게 이거였습니다.

친구들한테 예린이는 학원은 예체능 학원 하나만 다닌다고 했지만, 사실 예린이는 5살 때 문화센터에 체험을 5개나 다녔고 7살 때부턴 교과 보습 학원 3군데, 영어 4군데, 수학 3군데, 음악, 미술 학원 하나씩에 발레, 문화센터, 요리 등 별별 학원을 다 다녔습니다. ‘까까’,나 ‘맘마’ 같은 유아적인 표현은 안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우리 집 책장 한 쪽을 다 차지한 교육에 관한 책들입니다.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었는지 예린이는 언니랑 둘이서 엄마 몰래 쓰레기 책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왜, 왜 공부를 잘해야만 출세를 할 수 있을까?’ 은하처럼 성격이 시원시원한 거로는 출세를 못하는 것인지, 예린이는 정말로 괴로웠습니다.


인정이 이야기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애들이 웬만큼 빠진 후 후문으로 뛰쳐나와 왼쪽으로 한번, 또 좌회전을 하고 판자촌을 가로질러 3번째 집이 우리 집입니다.

"엄마! 갔다 왔어!"

"인정이 이제 오나? 인정이 강냉이떡 묵어바라. 뜨끈뜨끈해서 좋다. 오늘은 학교 어땠나?"

"응, 그냥 좋았어."

인정이는 얼른 가정통신문을 엄마 손에 쥐어주고서 강냉이떡을 하나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오물오물 대면서 최대한 천천히 씹었습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은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짝인 종훈이가 나보고 "야, 고인정! 넌 이름도 인정이면서 인정이 왜 그렇게 없냐? 만날 집에 갈 때도 막 뛰고, 애들한테 뭐 빌려 주지도 않고. 잠자코 조용히 있으니까 고인돌이냐?"라고 놀렸기 때문입니다. 남자애들이랑 여자애들 몇이 까르르 웃어댔습니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가난해서 그런다고, 니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국가에서 보호해줄 정도로 가난해서 그런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건을 빌려주면 돌려가며 쓰는 애들 있으니까 닳을까봐 그런다고, 소리소리 꽥꽥 질러대면서 몇 대 쥐어박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종훈이 엄마가 선생님이랑 고등학교 동창사이인데다가, 엄마가 걱정하게 할 수 없어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겨우 참았습니다.

"어, 인정아, 입술에서 피 나!"

정연이가 말했습니다. 또 입니다.

"괜찮아, 이건."

휴지를 갖다 닦고 입에 들어간 피를 뱉어냈습니다. 김종훈이 와서 "인정이가 입에서 삐가 나쪄 아야 해쪄요?"라고 놀려댔습니다. 인정이도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김종훈이 더 만만하게 보는데 말입니다.

"하나도 안 아팠다, 어쩔래?"

김종훈은 벌써 지 자리에 가고 없었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정연이는 학원이라도 다니지, 은하는 애들이 달리기로라도 알아주지, 예린이는 공부도 잘하고 회장 자리를 예약해놓지, 인정이는 애들이 알아주면 그게 더 신기할 지경인 것 같았습니다.

"강냉이떡 맛있네."

"그래? 학교도 재밌고, 그러니까 인정이 마음만이라도 건강하겄어."

‘아니.’

인정이가 속으로 되받아쳤습니다. 소리가 인정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이영서 기자 (서울잠현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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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유민
서울선사초등학교 / 5학년
2012-08-02 21:49:02
| 반친구들의 일과를 하나씩 담아서 너무 재미있네요~.
백지원
이리마한초등학교 / 6학년
2012-08-07 21:29:04
| 옴니버스 식인가요? 너무 재미있어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종훈이 이야기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인혜
대구대청초등학교 / 5학년
2012-08-13 13:32:57
| 정말 재미있네요. 약간 동감이 되는 이야기도 있네요.
이영서
서울잠현초등학교 / 4학년
2012-08-26 09:15:12
| 왠지 이리 저리 돌리다 보니까 여러 관점에서 보기엔 이 형식이 좋을 듯 하더라구요. 아 그런데 백지원 기자님! 옴니버스 형식이 제가 쓴 형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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