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정인천구산초등학교
2월 23일, 스무 명의 푸른누리 기자단은 독립문역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 역사박물관을 취재하기 위해 모였다. 형무소란 교도소를 가리키던 옛말이다. ‘교도소’는 ‘감옥’이다. 감옥이란 죄인들만이 가는 곳인데 왜 이 곳에 유관순 열사와 같은 애국지사들이 있어야 했는지 알아보았다.
그 이유는 바로 서대문 형무소가 일본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1800년대 말, 우리나라를 장악하기 시작해 1900년대 초 우리나라를 휘두르게 된 일본이 일본에 대항 한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을 죄인이 아닌 죄인으로 고문하고 처형하기 위해 지었기 때문이다. 높은 팔각 기둥모양의 망루가 마치 꺾을 수 없는 애국지사의 의지를 초조하듯 감시하는 일본의 느낌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 지하 1층에 ‘취조실’과 고문을 한 많은 고문실들이 내 마음을 저리게 하고 그 모진 고문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그 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특히, 생존 해 계신 ‘이병희’지사님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죽는 게 낫거든. 아픈 거 보다 죽는 게 나아.”라고 한 고문의 증언을 들으니 나도 모르는 아픔이 똑같이 느껴졌다.
또 ‘이병희’ 지사님의 증언 중에 “나라를 구하려면 목숨을 내놔야지. 독립운동을 하지. 자기 목숨을 안 내놓고는 독립운동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 죽는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하게 되어 있어.”라는 말씀은 잊을 수가 없다. 이 외에도 수감자들의 기록과 노역의 증거들, 한센병사, 9옥사 등 일제강점기에 억울하고 부당한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추모비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애국지사들에게 마음을 담아 묵념을 하고 돌아서는데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에는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사형수들이 독립을 보지 못한 체 세상을 떠난 슬픔이 서려 있다고 해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한다. 사형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시구문’은 나라를 구하려던 의로운 사람들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고 그 죽음조차 알려지지 않고 시신을 몰래 버려지던 일제의 잔혹함을 알 수 있게 한 장소였다.
유덕웅 해설자님은 질문 응답 시간에 “애국지사님들이 당하신 고문은 총 몇 가지인가요?” 라는 질문에 “약 70가지 정도가 있습니다.”라고 답을 해주었다. 또 어떤 기자는 “일본인이 오면 유덕웅 해설자님께서는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어보자 “이것은 봉사이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질문 응답시간이 끝났다.
삼일절에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구하신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아 태극기를 게양해야겠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나라사랑의 길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