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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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성남 중부초등학교는 수원화성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인데 100년만에 가장 추운 4월 하순이였다고 한다. 게다가 바람도 세차게 불고 비까지 오는날 우리는 예정대로 현장학습을 갔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수원화성을 간다고 하니 우리 4학년 친구들은 너무 좋아하고 씩씩한 모습이였다.
며칠 전 난 정약용 생가와 실학 박물관을 다녀 왔는데 거중기를 이용해서 만든 수원화성을 간다니 무척 긴장이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 거중기를 사용했고 수원화성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니 수원화성을 설명하시는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미리 화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고 하셔서 너무 설레였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화성은 18세기 조선시대 제22대 정조임금 때 수워네 세운 성으로 방어와 공격시설을 잘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이고 아름다우며 실용적인 성으로 동양성곽의 백미로 꼽힌다고 했다. 정조임금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인데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죽음을 당했다는데 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서로간의 의견이 다르다고 한나라의 왕자를 죽게 한다는 것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던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을 치고의 명당이라는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고 부근에 고을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 성을 쌓아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허여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단다. 화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되거나 성문 등이 불타 없어지기도 햇는데 1970년대 대부분 축성을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래대로 복원 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축성에 따른 설계와 비용 공사기간 등의 모든 것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라고 한다. 화성은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재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정조 임금은 무척 효자였다고 한다. 화성 건설이 한창인 1795년 2월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감잔치를 화성행궁에서 열었다.9일새벽에 출발하여 다음날인 10일 화성에 도착하였는데 11일에 수원 향교 대성전에서 참배를 하고 낙남헌에서 과거를 거행하였는데 지역부민을 채용하기 위한 임금의 배려였다고 한다. 12일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원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였고 야간 군사 훈련도 실시했다고 한다.
13일에는 혜경궁의 내외 친척을 초청한 가운데 열린 회갑연에서 왕과 신하들은 음식과 술잔을 오리고 축하하였다.다음날인 14일엔 화성부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주고 노인들을 위한 양로 잔치까지 열어주었다고 한다. 화성을 떠나 궁궐을 도착하는 것으로 여드레 동안의 큰 행사를 끝내고 이행사의 모든 내용을 기록하게 했는데 ‘원행을묘정리의궤’라고 한다. 해설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조임금의 효성스런 마음에 감동을 받았고 그 여드레 동안의 행사 내용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긴 자료를 보고 너무 놀라웠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차에서 내려 화성을 둘러보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곳을 둘러보니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특히 사도세자가 뒤주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데 그 뒤주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친구들은 그 속에 들어가서 체험도 하고 신나 보였는데 난 왠지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 날은 여러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많이 왔는데 우리 학교만큼 자세하게 둘러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게서 우리들이 알차게 공부 할 수있도록 차안에서 미리 설명을 해주신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화성 성역에는 성쌓기에 능률을 올리기 위해 과학 기술을 이용했는데 새로운 운반 도구인 유형거와 거중기 녹로나 활차등의 개발은 축성 기간을 단축 할뿐 아니라 비용을 줄이는데 효과적이였다고 한다.정약용선생은 독일인이 쓴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8개의 도르래를 사용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거중기를 만들었으니 우리 조선의 과학 기술의 뛰어남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자료가 아닌가?
조선시대의 만들어진 자료를 가지고 오늘날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에 난 또 한번 놀랐다. 박물관이나 역사관에 가서 옛날의 모습을 보면 지금과 같은 뛰어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통시설이나 통신 장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생겼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설계자료나 새로 복원된 수원화성의 모습을 보고 이해 할 수가 있었다.조선시대 교통도 불편하고 통신시설도 지금과는 달랐을텐데 서울에서 수원까지 며칠에 걸쳐 이동을 했다는 것에 놀라웠고 그런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다는 정조 임금의 뛰어난 생각에 감탄을 했다.
그동안 현장학습을 다녔을 때는 그저 도시락을 먹고 친구들과 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역사를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참 많은 것이 새롭게 보였다.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내내 즐거웠고 우리 조상들의 뛰어남에 난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비록 날씨 때문에 현장학습을 하면서 춥고 우산도 망가져서 잠시 짜증이 났지만 우리는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왔다는 생각을 하니 서울에서 이곳까지 말을 타고 또는 걸어서 왔을 조선시대 자랑스런 정조임금님과 신하들을 생각하니 난 짜증을 내면 안될 것 같아서 즐겁게 버스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따라 모처럼 엄마가 싸주신 깁밥이 참 맛있었다.
백승협 기자 (중부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