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범 기자 (대전서원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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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4일 푸른누리 기자 33명과 학부모 38명이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 방조제를 탐방했다. 힘들었던 지난 취재(4월 27일)를 보완한 탐방이었다. 10시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좀 빠듯했지만 도착해 보니 벌써 많은 기자들이 와 있었다. 10시 10분 기자와 학부모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새만금으로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35분 동안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11시쯤에 새만금 전시관에 도착하자 전시관 앞에 달려 있는 전광판에 ‘어린이 기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고 돼 있어서 기자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새삼 느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1987년 11월 2일 당시 정인용 부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에서 황인성 농림수산부 장관께서 처음으로 서해안 간척사업을「새만금간척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사용하면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 명칭은 김제·만경 방조제를 더 크게, 더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에서 예부터 ‘금만’이라는 말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여 만든 신조어로, 오래 전부터 옥토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이 일구어 내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새만금 주요 사업은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33.9km를 쌓고 간척한 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하고 경제와 산업, 관광단지 등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이며 그 규모는 40,100㏊이고 전라북도의 군산시ㆍ김제시ㆍ부안군의 1도 2시 1군 19읍ㆍ면ㆍ동까지이며, 시설로는 방조제가 33km이고 배수갑면 2개이고, 새만금의 구체적인 사업기간은 1991년부터 2020년까지라고 한다. 생태계 파괴 등 여러 이유들로 환경 단체의 항의도 있었고 두 번이나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환경을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태계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개발하시겠다는 어른들의 약속을 난 지금도 믿는다.
새만금 방조제는 밑에 매트리스 같은 것을 깔고 바다 모래를 끌어올려서 작업했다고 한다. 2006년 3월 27일 기상악화로 종점부 단면이 쓸려갔지만 바로 사업을 재개해서 결국 2006년 4월 21일에 사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종점부가 파도에 쓸려갈 수도 있으니 5톤 정도의 돌덩이들을 망태에 욲어서 바다 밑으로 투하했다고 한다. 이렇게 33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었다.
새만금 방조제의 넓이는 평균 290m, 최고 535m였고 높이는 평균 36m, 최고 54m이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아직 없지만 절반 정도를 농업용지로 쓴다고 한다. 홍보관과 공공시설, 편의시설 등을 지어서 2020년까지 도시로 만들 것이다. 이렇게 건설된 간척시의 면적은 서울시의 3분의 2, 전북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2배, 서울 여의도의 140배가 될 만큼 크고 인구는 전주시의 절반 정도인 약 30만 명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간척시의 이름은 아리울(아리:물, 울:울타리)로 물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농업, 공업에 필요한 용수를 대기 위해 중간에 3분의 1을 호수로 짓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방조제라고 생각하며 전시관을 떠나 점심을 먹는 곳으로 향했다. 점심은 뷔페였다. 점심은 아주 맛있었다. 다 먹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전망대를 둘러볼 수도 있었다.
1시 10분쯤 되자, 새만금 방조제 준공 기념탑에 도착했다. 기념탑은 무언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을 상징물로 표현한다. 맨 위의 커다란 공 같은 부분은 우리 대한민국의 힘을 상징하고 사방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붙어 있는 구부러진 듯한 조형물은 바다의 물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가 33km라서 기념탑의 높이도 33m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배를 타러 갔다. 원래 나는 배라고 하면 천안함이나 타이타닉호가 떠올라서 큰 유람선을 생각했는데 유람선을 보니 솔직히 좀 이상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1층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계셨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목적지가 어딘지 사실 궁금했다. 선유도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마음이 설렜고 기념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출발한 지 3~40분 만에 고군산군도에 속해 있는 선유도(신선 선仙, 노닐 유游)에 도착했다. 카트 체험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카트는 바로 골프용 차를 개조해서 만든 운전자 포함 11인승의 차였다. 이 차는 다른 차들과 달리 전기를 연료로 쓰는 친환경적인 탈것이다.
첫 목적지인 장자대교는 특이하게도 500kg 이상은 올라갈 수 없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했다. 장자대교 위에서 밑을 바라보니 참으로 장관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해변가에 쓰레기가 많아서 환경오염을 실감할 정도였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다시 카트에 타서 선유도 관광을 했다. 이 섬은 작긴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선생님이 전교생 수보다 많다는 것이다.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올 때는 간식을 먹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 진짜 흥미롭고 즐거웠던 새만금 탐방을 마쳤다. 탐방을 하는 동안 우리 대한민국 기술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고 푸른누리 기자라서 귀빈 대우를 받으니 마치 대통령이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 같았다. 오프닝과 클로징의 일일 리포트의 새로운 경험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계속되는 질문에도 정성들여 대답해 주신 새만금 전시관 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관장님 그때 쓰셨던 모자 정말 잘 어울어요. 신혼여행 꼭 새만금으로 갈게요.".
황승범 기자 (대전서원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