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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6월 16일

테마기획-6.25 추천 리스트 프린트

이채린 기자 (영훈초등학교 / 4학년)

추천 : 31 / 조회수 :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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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그 전쟁은 우리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다.

6.25 전쟁은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바로 60년, 7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멀게 느껴지는 전쟁. 그런데 오늘 취재를 하고 나서 마음이 싹 바뀌었다. 바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앞에도 전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가족을 잃어버리시거나, 돌아가시거나 한 경우도 있었다.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할머니께서는 전쟁이 너무나 슬프시고 가슴 아프셔서 지금까지도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리신다고 하셨다. 전쟁영화도 보실 때마다 싫으시다고 하실 정도였다. 6.25 전쟁이 시작되던 날, 할머니는 당시 14살, 중학교 1학년이셨다. 당시에는 정말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셔서 전쟁을 겪고 나서 너무나도 끔찍하셨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전쟁이 시작되자 미아리에서 서울 시내 한가운데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피난오는 것을 처음으로 전쟁이라 는 것을 알아차리셨다고 하신다. 그리고 처음으로 폭격을 보신 것은 전쟁 후 며칠뒤, 얼마 안 되어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할머니 댁 근처 대학 건물이 폭격을 맍아 허물어지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너무 무서워서 숨어있었다고하신다.

6.25 전쟁을 겪었다면 적어도 1번쯤은 피난을 간 경험이 있으실 것이다. 그래서 여쭈어 보았더니 할머니께서는 1.4 후퇴 (1951년)때 서울에서 대전으로 약 한 달 동안이나 피난을 가셨다고 한다. 다행히 대전은 서울보다 상황이 나았지만, 피난길 동안 힘드셨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처음으로, 난생 처음으로 집을 버리고, 그리고 목적지도 모른 채 어디론가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셨고, 피난을 가다가 가족들이 헤어져서 울부짖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께서는 외사촌 동생을 잃어서 아직도 못 찾아서 이젠 죽었는 지,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외사촌 동생의 가족들은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하셨다. 피난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이 옆에서 픽, 픽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으로 무서웠다. 할머니께서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살아있는 것이 참 운 좋은 일이라고 말씀
하셨다.
피난길에도 계속해서 폭격을 맞아 사람의 죽고, 건물도 부서지고, 집도 없고, 학교도 없는 광경을 할머니는 참 슬프셨을 것 같다. 그래서 학교가 없어 공부도 잘 하지 못하셨지만, 할 때에는 창고에서 하셨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슬픈 6.25 전쟁이었다. 피난길에서는 음식도 거의 없었다. 음식이라고는 주먹밥, 호박죽, 밥과 소금(심지어 어떤 분들은 미숫가루를 대신 먹었다고 한다.),콩, 그리고 충격적이지만 나무껍질조차 먹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음식은 시골에 있는 작은 집에 들어가 초라하게 먹었다고 하신다.

할머니의 친척 중에서는 작은아버지께서 참전하셨다고 한다. 이 분은 육군소령이셨는데, 추운 겨울에 전쟁에 시달려 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 외에도 가슴 아픈 일이 2가지 더 있었다고 하신다. 먼저, 할머니의 남동생 2명은 병이 났는데 치료받을 곳이 없었고, 할머니의 친할머니도 마찬가지로 치료 받을 곳이 없어 모두 돌아가셨다고 한다. 게다가 할머니의 친척 중에서는 외할아버지께
서 대한민국 공직으로 일하고 계셨는데, 공산당이 가장 먼저 잡으려는 경찰, 공무원, 군인 중 공무원이셨기에 하는 수 없이 혼자서 피난을 가셨다고 하신다.

다행히전쟁이 끝나고 만나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외할머니께서는 깊은 상처를 입으셨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서울에서 충남 공주까지 피난을 가셨다. 친척 분들 중 작은아버지께서는 참전하셨는데, 폭탄의 파편을 맞고 돌아가셔서, 나중에 장사도 할아버지의 어머니께서 홀로 씁쓸히 장사를 드렸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다 전쟁은 무척 무서운 것이기에 다시는,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으시고 싶다고 강조를 하셨다. 그만큼 전쟁이두려우셨기에 전쟁이 끝났을 때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고 가족끼리 얼싸안으셨다고 하셨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할머니께서는 말을 중간중간 멈추시고 눈물을 닦으시는 듯 하셨다. 그만큼 전쟁은 두 분께 모두 아주 큰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인터뷰를 할수록 나도 전쟁에 대한 심각함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6.25전쟁이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이렇게사람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정말 다시는 일어나면안 될 그런 전쟁이었다. 인터뷰를 도와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우리민족의 남북전쟁이 그렇게 심한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던 취재였다.

이채린 기자 (영훈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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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경
서울백석중학교 / 1학년
2011-06-17 18:06:22
| 이채린기자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들은 6.25 이야기는 더 가슴이 아프고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기사를 읽으며 다시 한번 더 슬픈 6.25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임송미
병영초등학교 / 6학년
2011-06-17 19:45:52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정말 가슴 아픕니다. 6.25전쟁에 더욱 관심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박용웅
인천당하중학교 / 1학년
2011-06-18 13:06:00
| 정말 제 2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도희
일동초등학교 / 5학년
2011-06-19 09:44:17
|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도 군대에서 수류탄이 터져 손을 다치는 위험한 경험을 하셔서 전쟁이란 무서움이 얼마나 큰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이셨는데... 그렇게 멋진 할아버지가 몇년전에 돌아 가셨어요. 갑자기 이 기사를 읽고보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요...
정은교
서울창도초등학교 / 5학년
2011-06-27 19:24:36
|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정말 슬펐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기종관
대선초등학교 / 5학년
2011-06-28 06:50:56
| 전쟁을 직접 겪으신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앞으로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1-07-05 20:43:49
| 6.25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슬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이야기가 있기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평화스럽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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