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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6월 16일

테마기획-6.25 추천 리스트 프린트

남윤성 기자 (성남신기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85 / 조회수 :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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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에게 물려 줄 완전한 우리나라

우리나라 국민의 가슴 속에 공통된 안타까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6.25 전쟁입니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겪으신 분과 가족, 친척 중에서 겪으셨던 분의 체험을 자주 들은 분, 또 책, 영상물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해마다 6월 25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그때의 사변을 다시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작성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 한국역사교육연구회 편/한국 갈릴레이’, ‘101간의 한국사 일주/박영수/영교출판’이 두 권의 책에서는 6.25 전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꽝, 꽝, 꽝꽝!", 38선에 대포 소리가 울리더니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군이 돌연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20만의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옹진, 개성, 동두천, 춘천, 안악 등지의 육지로 공격함과 동시에 동해안을 돌아 삼척에 상륙하여 해안으로도 공격해 넘어 왔습니다. 바로 6.25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남한에는 미군이 남아 있지 않고 물러간 상태였고 국군은 농번기에 바쁜 농촌을 돕기 위해 휴가를 갔던 군인들과 주말 외출 중인 장병들도 있었습니다. 전시 상황이 되자, 전원 귀대시킨 후 대응에 나섰지만 소련군의 도움을 받은 북한군은 탱크 242대, 야크 전투기 211대를 포함 각종 성능이 좋은 대포와 무기를 갖추고 있었기에 방어선이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7월에 한강을 건넌 인민군이 수원, 오산, 대전이 함락되자 정부는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내려 갔고 미처 피하지 못한 피난민 중에서 국회의원, 정치가, 수많은 학자와 기업인이 북으로 끌려가고 청년들은 인민군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급히 일본에 있는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에 있는 미 8군 산하의 보병 1개 대대와 포병 1개 대대가 유엔군보다 먼저 한국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유엔군(16개 나라로 이루어진)도 한국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고 9월에 유엔군과 국군은 굳은 단결로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9월 28일에 서울을 되찾은 뒤 다시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습니다.


우리 국군은 10월에 혜산진까지 돌진했으나 중 공군이 30만 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전술을 사용하였기에 사람 수에 밀려서 서울 시민은 다시 한강 이남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이때가 1951년 1월 4일 이라 하여 ‘1.4 후퇴’라고 합니다. 북쪽 동포들도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고 임시 수도인 부산은 250만의 피난민으로 북적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산 가족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3월 중순에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서울을 되찾은 뒤 1951년 7월부터 개성에서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포로 교환 문제로 늦어지게 되어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3년 동안의 한국 전쟁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으로 끝이 난 것입니다.


6.25 사변을 통해 제가 느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복(1948년)과 6.25(1950년) 그 사이에서 남한은 민주주의가 북한은 공산주의가 영향을 받게 된 그 시점부터 한민족의 아픔, 이별, 그리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또 처음 선택이 얼마나 오랜 세월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통일이 되는 그 시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25를 직접 겪은 분들이 좀 더 많이 생존해 계실 때 평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나부터 이렇게 책, 영상물,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하다 보니 통일이 절실하다고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지도에서 아주 작은 우리 나라를 보면서 잠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작은데, 그것도 3.8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빨리 온전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남과 북은 생활 풍습과 사상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서로가 다른 나라가 될 수도 있기에 참 걱정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한 민족인 형제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있는 나라는 우리 민족 뿐입니다. 이 시간에도 남과 북의 고통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청와대 3기 기자인 남윤성, 지혜와 사랑으로 전쟁의 종료를 외칩니다.

남윤성 기자 (성남신기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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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경
서울백석중학교 / 1학년
2011-06-17 17:52:20
| 남윤성기자님 *^^*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평화를 위해 ‘전쟁의 종료’를 함께 외쳐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손해수
숭신여자중학교 / 1학년
2011-06-25 17:05:31
| 통일이 되는길이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저희 증조 할머니께서는 징용가신 증조할머니 동생분들을 보시지 못하고 96세의 나이로 얼마전에 돌아가셨어요 통일이 되어도 역사가 있는 분들은 모두 이세상에 안계세요.
정은교
서울창도초등학교 / 5학년
2011-06-27 19:22:25
| 정말 자세하게 쓰셨군요. 6.25당시의 상황이 잘 이해됩니다.
김도희
일동초등학교 / 5학년
2011-06-29 15:45:57
| 와ㅣ~~아 끝부분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요.^^ 기사 잘 읽었어요^^ 추천하고 갈께요~~!
전현환
대륜중학교 / 1학년
2011-07-05 20:42:14
| 네. 6.25때문에 우리나라가 분단되었었는데 어서다니 우리나라가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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