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린 독자 (서울고명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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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박물관 옆에 보면 작은 궁궐이 하나 있습니다. 그 궁궐은 바로 서울의 5궁 중 하나인, 경희궁지입니다. 원래는 인조 아버지의 집이었는데, 광해군이 왕권을 바로 잡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1617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23년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법궁(주가 되는 궁궐)인 창덕궁을 보필하는 이궁이 되었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까지의 10대 왕들이 이곳에 머물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정전(주가 되는 건물)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왕의 사무실)인 자정전 등 100여 동의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금천교, 흥화문, 그리고 옛날부터 물이 솟았다는 서암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며 1910년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경희궁의 대부분의 건물을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면적은 옛날의 약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경희궁도 금천교라는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 역사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가야 합니다. 바로 이 작은 다리가 경희궁의 금천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이 다리를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궁궐은 정문 뒤에 다리가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왕과 사람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경희궁에서는 금천교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흥화문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경희궁의 정문인 그 흥화문도 일제가 1932년에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의 정문으로 쓰기 위해 떼어갔다고 합니다.
경희궁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물이 숭정전입니다. 숭정전은 법전(주가 되는 건물)답게 내부에는 어좌와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이 있었습니다. 비극적인 사실은 왕의 사무실이었던 자정전에 책상도, 의자도, 심지어는 왕의 상징이었던 일월오봉병도 없었습니다. 경복궁의 사정전에 비하면 너무 쓸쓸했습니다. 다른 궁궐에서 볼 수 없는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태령전이라는 건물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희궁은 말할 것도 없이 정말 쓸쓸하고 외로운 궁궐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궁궐 건물 안은 텅텅 비어있어 궁궐이었지만 궁궐같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또 저는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했습니다. 일제에게 대부분의 건물이 헐려 버린 것도 너무 슬픈 일인데, 아무도 경희궁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곁에서 조금씩 소외되어 간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이궁이라 하지만, 한 궁궐이고 본래의 모습을 잃은 문화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대통령 할아버지께 "경희궁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하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경희궁은 지금은 비록 규모도 좁아진 궁궐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함께 경희궁에 더 관심을 갖고 경희궁의 쓸쓸함을 행복함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장예린 독자 (서울고명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