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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인천천마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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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역사로 빠져봅시다.

인천에서 강화초지대교를 지나 우회전을 하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해안도로를 따라 쭉 올라가면 초지진을 시작으로 강화역사관까지 볼거리가 많다. 지난 3월 15일. 바람이 많이 부는 일요일 아침 인천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초지진이다. 여기 뿐만 아니라 덕진진등 강화의 곳곳의 유적지에는 설명을 해주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 식구들도 초지진을 들어가기전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한 다음 유적지를 둘러 보았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다.

고종 3년 9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함대 및 고종 8년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침입한 미국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 8월 침입한 일본 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견적지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초지진의 초지돈대가 있었다. 초지진의 초지 돈대는 미군은 6월 10일 약 2시간 동안 먼저 맹렬한 함포사격을 가하여 조선군을 파괴 시킨 후에 상륙 하였기 때문에 오후 4시경 초지돈에 전투 없이 입성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덕진진에 갔다. 덕진진에는 남장포대와 덕진돈대가 있었다. 덕진진의 성외벽을 둘러볼 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너무 추웠다.


덕진진은 신미양요때 미국의 아세아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 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덕진진의 아래에는 비석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 고종 4년 홍선대원군의 명으로 건립한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경고비라고 한다.

그 다음 광성보를 갔다.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격전지로 1871년 4월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략하였을 때 당시 지휘관인 어재연 장군이하 전 용사가 용감하게 싸워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초지진과 덕진진과 똑같이 성의 모양도 비슷하였다.

안에는 대포를 쏘기 위한 공간이 쭉 둘러 있었으며, 그 공간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거기에 대포 입구를 놓고 쏘게 되어 있었다.

외벽을 굉장히 높았는데,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강화의 차가운 바람도 막아 내는 것 같았다.

안을 들어가 있으면 가운데가 들어간 모양이어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밖을 나가면 바람이 엄청 났었다.

사회 시간에 배우는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과 관련 있는 초지진 등 우리들이 책으로만 보았던 곳을 눈으로 듣고 설명을 들으니 진정한 나만의 역사 서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강화의 탐방을 주말마다 하고 있는데, 아직도 강화에는 많은 유적지와 볼거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강화군의 안내도를 피고 다음번의 갈 곳을 정하고 있는 중이다.

박완수 기자 (인천천마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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