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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2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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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서울동일초등학교 교사)

추천 : 38 / 조회수 : 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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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부임 그리고 첫 졸업

아직은 후덥지근했던 8월 말,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5년간 근무하게 될 학교에 정식으로 발령이 났다.
6학년 영어 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제자들을 만났다. 6학년이라, 학년 중간에 만나게 된 아이들이라 많이 힘들진 않을까, 아직 젊은 내가 ‘선생님답게’ 보일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만난 나의 첫 제자들은 좁은 영어실을 꽉 채울만큼, 작은 선생님에 비해 키도 크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정말 어른처럼 성숙한 아이들도 많아 보였다. 무조건 ‘기싸움에서 지면 안 돼.’라는 생각 하나만 했기 때문에 농담을 할 여유도, 함께 많이 웃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수업만 하기에 바빴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6학년 학생들이었기에 단체로 벌을 줄 때도 많이 있었다.

하루는 4시간 연속, 아이들과 싸우느라 너무 지쳐버렸었다. 힘이 쭉쭉 빠지고, 가르치는 재미가 뭔지도 느껴지지 않는 ‘전쟁’같은 하루하루에 회의감이 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입맛이 없어 점심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 아이가 오더니 편지 뭉치를 전해주고 갔다. “뭐야?” 하니까 “선생님 드리는 거예요.” 한다. 학생이 돌아간 후, 펴보니 몇 명이 써서 낸 반성문이다.

담임선생님이 쓰라고 하셨나?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선생님 얼굴이 힘들어 보였어요.’ ‘우리가 첫 제자인데..’ 하는 말들에 그냥 웃음이 났다. 귀여운 녀석들..

그런데 잠시 후에 또 누가 왔다. “선생님 전 6학년 0반의 000인데요. 오늘 우리가 수업시간에 태도가 안 좋았지 않습니까.” “응, 그런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얼마나 기특하고 예쁘던지. 얘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려고 마음 속으로 얼마나 준비했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말하러 와줬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화가 나고 밥도 안 넘어갈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가도, 이런 예쁜짓 하나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곤 했다. ‘이래서 계속 교사를 하는구나...’ 싶었다. 오늘은 밉다가도 다음날 보면 다시 예쁘다.

복도를 다니다 보면 자기들끼리 장난치다가, “선생님, 얘가 저 괴롭혀요.”하면서 내 도움을 요청하는 애교만점 남학생. “때리지 마.”하면서 지시봉으로 한 번 쿡 찔러주면 자기들끼리 그게 또 재미있다고 킥킥대고 웃는다. 지나가던 나를 불러 여학생 화장실에 친구가 던져 넣은 양말 좀 꺼내달라고 하는 애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직도 애들이면서 어른인척 하고, 그러면서도 어떨 때보면 ‘아직 애는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도 선생님 마음 조금은 이해할 줄도 알고, 공감도 할 줄 아는 예쁜이들.

졸업을 시키면서, 담임도 아니고 함께 한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너희는 모를 거다. 정말 그립겠구나... 보고 싶어서 일부러 너희들 교실이 있는 복도로 지나다니곤 했던 내 마음 모를 거다. 그래도 나에겐 첫 제자였던 너희들. 학교에서 복도를 다니면서 너희들 볼 때마다 반갑고 뿌듯하고, 왠지 모르게 정이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힘든 6학년이라고 하고, 나 역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6학년을 맡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매력있는 6학년이다. 가끔 선생님 생각도 해주고, 찾아와도 주었으면 좋겠다. 잘 자라서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길. 사랑한다. 얘들아!


윤소영(서울동일초등학교 교사)

윤소영 (서울동일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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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2010-02-19 14:03:00
| 선생님이 6학년 어린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느낌이에요^^
김승현
2010-02-19 18:05:45
| 선생님의 마음이 아주 잘 느껴지네요~~~감동적이예요!!
이세정
2010-02-20 17:39:00
| 감사합니다. 푸른누리에 멋진 글 올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백지원
2010-02-22 20:16:45
| 윤소영 선생님^^
첫붕미 첫제자들 오래토록 기억해 주시고 푸른누리 기자들 팍 팍 밀어주세요^^
김해원
2010-02-23 12:30:47
| 너무 감동적이네요^^
조수현
2010-02-25 14:40:45
| 와 넘넘 감동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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