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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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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임 독자 (영덕중학교 / 1학년)

추천 : 54 / 조회수 :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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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된 것은 조선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였다

여러분은 혹시 덕혜옹주를 아시나요. 고종황제의 사랑스럽고 귀한 막내딸이었지만 아버지의 독살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해야 했던 고통,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던 37년간의 비참한 삶,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나서도 조선땅에 발도 딛지 못한 것, 원수나 다름없는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5년간의 정신병동 감금생활, 하나뿐인 딸의 자살, 조국의 외면, 일생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돌아왔지만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 조선 최후의 왕족이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던 여자, 덕혜옹주.


저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책으로도 출판되어서 읽어보았더니 너무 슬프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기에 꼭 기사로 쓰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양귀인과 고종황제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행복한 삶은 잠깐뿐이었다. 옹주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꼈던 고종은 영친왕처럼 옹주마저 일본에 넘겨 질까봐 가장 가까운 시종의 조카, 김 장한을 부마로 삼으려고 했으나 혼사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몇년후, 1919년 고종이 승하했다. 겨우 7살인 옹주의 슬픔은 너무나도 커 항상 우울하게 지냈고 궁에는 덕혜옹주가 미쳤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1925년 3월,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그토록 우려하던 일본 학습원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때 옹주의 나이 겨우 열세살 이었다. 옹주의 성격은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고 경계심이 많아졌다. 항상 팔팔 끓인 물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보온병에 담게 하였고, 그것 말고는 어떤것도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의 독살로 누구도 믿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옹주의 불안한 마음이 이해되었다.

..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처음 그녀를 보았을때 나를 매료시켰던 생기발랄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일본말로 인사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국말로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신가봐요? " 했으나 옹주는 미소조차 띠지 않았다.

-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마사코)여사의 말

덕혜옹주는 따돌림까지 받아 화장실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거나 욕을 먹고 멸시를 당하는 일도 허다했다. 같은 학습원 동료들은 덕혜옹주를 무시했다. 점점 옹주는 지쳐갔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었으며 불면증에까지 시달려서 항상 심란해 했다. 나는 덕혜가 한 나라의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생했다는게 믿기지가 않았다. 새삼 또다시 속국의 아픔이 얼마나 뼈저리게 아픈것인지 알수가 있었다. 항상 조선을 그리워 했던 덕혜옹주는 연행이후 단 두번 조선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순종의 병세 악화와 죽음때문이었다. 몇 년 후, 어머니가 왕족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한 일본 .덕혜옹주의 심정이 어땠을까?


사춘기가 지나고, 덕혜옹주도 성년이 되어갔다. 또다시 일본에서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조선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덕혜옹주를 도쿄 제국대학에 다니는 일본 청년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일본 왕실의 혈통도 아닌 일개 대마도 번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영친왕은 옹주의 건강문제를 이유로 대며 완강히 그것을 거부했지만 결혼은 결정되었다. 학습원 생활에 대한 부적응과 고국의 향수로 인한 몽유병이 발전해 쉬지 않으면 안될만큼 심신이 허약해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 소 다케유키와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 덕혜옹주는 학교 식수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팔팔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아갔다. 왜 보온병을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식수에 독이 있을까봐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전 오빠(순종)처럼 독을 먹다가 죽기는 싫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일본 학습원 동료의 말


..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으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종일 누워있고 먹지도 않고 때로 밤에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 뒷문으로 해서 오카사카 방면으로 걸어가고 하는 일도 있었다.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어 정신과 진료를 받게했다. 의사는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 이라고 했다.

-이방자(마사코)여사의 말

원하지도 않는 결혼때문에 힘들고 혼란스러웠을 옹주가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더욱이 외동딸 정혜 마저도 조선인 어머니를 부끄러워 하면서 증오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펐을지 상상 할 수 조차 없었다. 다행히 몇 년 후, 일본이 패망하였으나 덕혜옹주는 우리조선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15년동안 정신병동에서 감금되어 살아갔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고 정혜는 그때 이미 자살을 하였다. 긴 세월이 흐른 후,1962년1월 26일귀국할 때까지 도쿄 인근의 마쓰자와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와 매일신보에서 기자로 일한 김을한 기자(김장한의 형이기도 했음)에 의해 알려지면서 대통령도 알게되었고 드디어 대한민국에 귀국하였다. 그때 옹주의 나이, 50살이었다. 그 후로 덕혜옹주는 대한민국의 국적과 양 덕혜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또한 나라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창덕궁에서 생활하였다. 나는 늦게라도 옹주가 돌아온것이 너무 기뻤다. 만약 일본에서 억울 하게 생을 마감 했더라면 덕혜옹주는 죽어서도 한이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옹주의 존재도 모르고 외면했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로부터 27년후, 1989년 4월 옹주는 77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나는 옹주의 삶을 되짚어보며, 우리에게 희미해져 가고 있는 진정한 조국의 의미와 우리가 외면했던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회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일본을 품으려면 품을 수도 있었던 옹주는 끝까지 조국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 상황에 빗대어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약한 사람들과는 달리 옹주는 배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행했는지도 모르지만, 난 옹주의 그런 점이 너무 자랑스럽다. 물론 3.1절을 맞아서 용감한 독립투사들을 향해 기도를 해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고 조선의 왕녀였던 덕혜옹주를 위해서도 기도해주고 싶다. 만약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덕혜옹주 책을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죽어서야 자유로울수 있었던 덕혜옹주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나라를 잃는 아픔이 생기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한 날이었다. 아직도 독립을 꿈꾸는 티벳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티벳도 하루 빨리 독립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도 이런 아품을 겪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이되었으면 좋겠다. 죽기 전 정신이 돌아올 때 썼다는 옹주의 글, 이 글이야 말로 왜 우리가 그렇게 독립을 꿈꿨었는지 말해주고 있는것 같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 사진 출처: 위키백과 사전, 네이버(각 사이트에서 허락을 받음)

위 기사의 사진 / 동영상은 CCL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장형임 독자 (영덕중학교 /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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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지
2010-03-04 19:34:20
| 아.. 저도 저번에 네이버에서 본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가슴이 아프네요..
황지현
2010-03-04 19:50:46
| 아, 저도 덕혜옹주 책 읽어봤어요. 너무 슬프더라고요...
권아현
2010-03-07 19:03:40
| 제가 엄마 생신때 선물했던 책인데,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베스트셀러 1위여서..^^
김주형
2010-03-08 01:44:59
| 논술수업에서 했던건데 덕혜옹주가 아닌 덕혜공주로 바뀌면 좋겠어요
한주현
2010-03-08 19:41:21
| 덕혜옹주!! 책을 사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추천할께요.
황선화
2010-03-09 22:24:06
| 나라 뺏긴 설움이 이렇게 가슴 속에서 울린 적은 없었어요. 정말 동감이 가는 글이네요.
최누림
2010-03-10 23:14:15
|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이네요.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로 나와서 보고 싶었는데..
이세정
2010-03-11 17:09:52
| 저도 읽은책입니다. 장형임기자의 기사를 통해서 읽어보니 또 다른 느낌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분하고, 화가 났습니다.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못따서 분하다고 했는데... 분하다는 말은 그럴때 쓰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군요.
이정현
2010-03-13 20:04:11
| 저도 빨리 구입해서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역사와 희생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정호
2010-03-14 07:27:56
| 신문에 난 사진이네요. 책소개와 함께 본 사진이네요, 사진속 모습니 슬퍼보여요
전혜진
2010-03-14 12:19:45
| 이 책이 없어서 내용이 궁금했는데...
좀슬프네요..ㅠㅠ
민재희
2010-03-14 22:29:31
| 덕혜옹주,돌아오기라도 해서 다행이예요
이지윤
2010-03-15 14:06:02
| 덕혜옹주는 나라의 힘이 약하면 그 왕족까지도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준 슬픈 역사소설. 국력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사네요.
지유민
2010-03-18 00:18:32
| 지난주에 고궁박물관에서 사진을 보았었는데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여,,근데 3학년이 읽기엔 좀 어려울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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