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추천 리스트 프린트

박지인 독자 (진도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42 / 조회수 : 1638

뉴스 공유하기 C
					로그 미투데이 트위터 Facebook

독도레이서를 찾아 진도에서 서울로!

7월 1일, 독도레이서를 취재하는 기자를 선발하는 공지를 보았다. 천명이나 되는 기자가 활동 중이며 서울 근교에서 주로 탐방 및 인터뷰 활동이 벌어지기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체념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독도레이서인터뷰에는 욕심이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진도도 지금은 바다 위로 다리가 생겨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독도처럼 섬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도를 사랑하듯이 독도레이서도 독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과 나 사이에는 마음이 잘 통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데 정말 우린 통했을까? 취재 기자로 확정 선발되었다는 편집실의 전화를 받고 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너무 좋아서. 그러나 진도에서 서울까지는 5시간이 걸리고 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함께 동행할 수가 없어 인터뷰를 포기해야만 했다. 정말 절망적이었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힘든 결정을 해 주셨다. 함께 동행해 주시기로...


그 날 저녁, 독도레이서 인터뷰지를 읽고, 사미인곡 독도레이서 편을 보았다. 방송을 보기전엔 솔직히 독도레이서에 대해 잘 몰랐는데 방송을 보며 독도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헌신을 다하는 독도레이서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특히 팀원 한명을 행단 중 교통사고로 잃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여 다시 달리는 독도레이서 언니 오빠들이 대단해보였고, 절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인터뷰 당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목포로 향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였는데 가는 내내 내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고 심장은 콩닥 콩닥 뛰었다. 아마 지금까지 그렇게 설레였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후 4시 김채은(서울남산초 6), 민웅기(서울신우초 5), 박지인(진도초 5), 백지원(서울보라매초 6),김채은(서울마포초 6) 등 총 5명의 푸른누리 기자들은 독도레이서를 만나기 위해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합숙소에 갔다. 처음엔 무척이나 어색하고 서먹서먹했지만 독도레이서 언니,오빠들이 유머있고 재미있게 해 주어서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우리나라 또는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환경운동, 동물 보호 등도 그러하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독도를 알리게 된 이유가 있나요?" 라고 첫번째 질문이 쏟아지자 독도레이서 언니 오빠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고 독도가 다케시마로 오해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그 답을 듣고 독도레이서가 얼마나 독도를 아끼는지 알게 되었다. 독도를 아끼는 진실된 마음을 본받고 싶었다.


"이번 레이스의 주제는 ‘독도가 달린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문구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나요?"라는 질문에 성환오빠가 답했다. ‘독도가 달린다’라는 문구에는 독도레이서가 달린다는 뜻도 있지만 독도를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생각해 ‘대한민국이 달린다’라는 뜻이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달린다. 독도가 달린다. 정말 독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이 담긴 문구 같았다.

"반크의 경우는 사이버 상에서 독도를 알리고 있고, 가수 김장훈 씨의 경우는 뉴옥 타임즈에 광고를 내서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알렸습니다. 다른 방법도 많이 있을텐데 달리기를 통해서 독도를 알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라고 내가 질문했다. 가영언니가 서로 땀을 흘리면서 달리면,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같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세계인이 같이 뛰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믿고 독도레이서를 응원해 본다.


"1년간 세계일주를 한다니 언니 오빠들이 무척 멋져보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준비과정은 힘들고 어려웠을 것 같아요.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나,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인가요?" 이 질문은 내가 생각해도 꺼릴 것 같은 질문인데 대답을 잘 해주셨다. 독도가 달린다 행사에서 故김도건군이 포항을 30km남겨둔 지점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 마음이 더 성장해서 지금의 독도레이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면 나는 독도레이서를 그만 뒀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독도를 위해 달리는 독도레이서 언니, 오빠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독도레이서를 시작하고 나서 스스로의 삶에서 변화한 것이 있나요?" 내 질문에 진원오빠가 답했다. 일단 남자와 여자끼리 같이 합숙한다는 것이 변했고 본질적으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라고 답했다. 나도 그 아름답게 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다.

"우리는 독도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언니, 오빠들이 용기를 가지고 이 일을 잊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그건 책임감이라고 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고 세계사람들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막고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성환오빠가 답했다. 나도 책임감을 길러 독도문제를 없애야겠다.

"독도레이서로서 1년간 세계일주를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바, 또는 각오를 말씀해주세요."라는 질문에 성환 오빠의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 담임선생님일때의 급훈인 ‘Challenge to the world’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청소년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나도 이 급훈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세계로 도전해야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언니, 오빠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하게 됐다. 금새 친해진 언니, 오빠들과 헤어질려니 서운하고 아쉬운 생각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언니, 오빠들에게 "꼭 진도로 한번 달려 주세요"라고 말한 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다음 만남을 기약해야만 했다.

기차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커서 대학생이 되었을때 과연 지금의 독도레이서처럼 험난하고 고단하겠지만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독도를 지킬수 있을까? 독도레이서를 만나고 와서 외교통상부장관이 되고 싶은 나의 꿈이 더욱 확실해졌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 6시에 출발해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몸은 비록 피곤했지만 가장 설레고 보람찬 하루였으며 나의 정신과 마음은 뿌듯함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독도레이서 언니, 오빠들, 나는 당신들을 진정한 애국자라 칭하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화이팅!"

박지인 독자 (진도초등학교 / 5학년)

추천 리스트 프린트

사진이야기

놀이터


Template_ Compiler Error #10: cannot write compiled file "/web/webapp/data/ipress/iprdata7/e3/school.president.go.kr_paper/template/kr/_compile/group/28/1/bottom.htm.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