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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독자 (동학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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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선생님 생가 방문

7월 19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에 있는 민세 안재홍 선생님 생가(경기기념물 제135호)를 방문했다. 사실 민세 안재홍 선생님 생가를 방문하기에 앞서 선생님의 전기인 <곧은 붓으로 겨레를 이끌다>을 읽어 더욱 뜻깊었다.

안재홍 선생님은 1891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셨다. 항일민족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으로, 민족사학자로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노력한 정치가로 활동하셨다.

안재홍 선생님은 어린 시절 <천자문>과 <논어>, <맹자>, <사기>등의 한문을 공부하다가 1907년 열일곱살이 되어 신식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하셨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맺어지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일본 유학을 떠나 1911년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신 후 ‘도쿄조선인유학생학우회’를 만들어 활동하셨다.
안재홍 선생님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민세(民世)라는 아호를 지었다. 민세는 ‘민중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조선 민중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선생님의 뜻이 담겨 있다.

1915년 중앙학교 학감으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조선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일본 경찰들에게 알려져 2년 만에 학교에서 쫓겨났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입해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셔서 3년이 지난 뒤 출옥하였지만 2년 동안이나 몸을 추슬러야 하셨다.

1924년 <시대일보>의 기자로 일하시다가 1924년 9월에는 <조선일보>로 옮겨 주필과 이사가 되셨는데 논설과 시평으로 일본의 야만스러운 행동을 온 세상에 알리고 민중들의 독립을 간절히 바랄 수 있도록 하다가 여러 번 감옥에 갔다와야 했다.

1927년 1월 ‘신간회’는 발기인대회를 열어 기본 입장을 세상에 알리고 2월에는 창립총회를 열었다. 신간회 회장으로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 선출되셨고 안재홍 선생님은 조사연구부 총무간사가 되셨다.

1931년 조선일보사에 재정난이 좀처럼 풀리지 않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재홍 선생님은 사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아버지께 물려 받은 농토 대부분을 조선일보의 빚을 갚고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주는데 썼다. 1932년 일본 경찰은 만주 동포를 도우려고 모은 돈 가운데 얼마를 조선일보 운영에 썼다는 누명을 씌워 선생님은 다섯 번째로 감옥에 가셨고 사장도 그만두어야 하셨다. 안재홍 선생님은 일본의 ‘식민주의사관’에 맞서 조선이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증명하려고 하셨다. 1930년 1월 조선일보에 ‘조선상고사관견’이라는 글을 실으면서부터 고조선 연구에 몰두하셨으며 ‘여유당전서’를 위당 정인보 선생님과 함께 정리하여 출판하기도 하셨다. 1941년 ‘조선상고사감’을 10년여 동안의 연구 끝에 완성하셨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셨고, 좌우합작 추진위원,미군청정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의 정치 활동을 하시다가 1950년 북한군에 끌려가셨다. 1989년 3․1운동 기념일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으시면서 선생님의 독립운동에 대한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평택에 있는 생가에 도착하니 사랑채가 먼저 보였다. 대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아도 인기척이 없기에 들어가니 하얀 강아지가 짖어댔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나오셨는데 민세 안재홍 선생님의 큰 며느님이라고 하셨다. 천천히 둘러보고 사랑채는 열어 보아도 된다고 하셨다.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안채는 초가집이고 사랑채는 누마루가 있는 기와집이었다. 선생님께서 사용하셨던 우물도 보고 150년 되었다는 향나무도 보았다. 다른 분들의 생가는 건물만 있는데 안재홍 선생님의 생가에는 큰 며느님께서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돌아보는 게 많이 조심스러웠다. 팸플릿에 ‘한국고대사 연구에 몰두하던 조선학연구의 산실’로 소개된 사랑채에 들어가 보았다. 사랑채에는 선생님이 쓰셨을 가구와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닫혀 있지만 예전에는 이 사랑채 문을 활짝 열고 선생님께서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셨을 것이다.

사진 속의 안재홍 선생님을 보면서 일제에 맞서 싸우고, 백성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일본 식민사관에 맞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다 함께 말하고, 다 함께 산다’는 ‘다살이’를 말씀하시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민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북한으로 끌려가서 가족과도 헤어지고 우리나라의 발전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사랑채를 나오니 강아지 구름이가 다시 쫒아왔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대문을 나서는데 구름이가 친해진 모습으로 따라오며 배웅했다.

이예은 독자 (동학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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