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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가영센텀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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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어린이기자 2기와 3기에 이어 4기기자단으로 푸른누리와 함께 행복한 초등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년간의 기사들을 모아 푸른누리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푸른누리가 우리와 함께 영원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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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가영 기자 (센텀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14 / 조회수 : 754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대마도를 다녀왔어요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매우 기분이 설렜다.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임에도 터미널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8시 10분에 출발하는 ‘코비’가 바로 내가 승선했던 쾌속선이다. 승선 이후 1시간 55분을 뱃길로 이동해서 일본 대마도의 이즈하라 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쾌속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보다 짧았다.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여권을 보여주고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친 후 드디어 대마도에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이즈하라 거리의 풍경이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제일 먼저 찾아가 본 곳은 바로 조선 통신사를 맞이하던 고려문이 있는 곳이다. 쓰시마 역사 민속 자료관 앞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선 조선의 한양에서 에도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 전 부터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있었다고 한다. 뱃길로 수개월이 걸리는 먼 길을 오가며 조선통신사는 선진문화와 기술을 일본에 전달했다. 두 나라가 평화적으로 교류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통신사 일행이 묵던 숙소 주변에는 그들의 글이나 그림을 받으려는 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국서를 갖고 떠난 통신사는 당시 최고의 학식과 교양을 갖춘 지식인들이었다. 지금도 대마도,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등에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마도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그 흔적을 찾아보았다. 대마도에는 조선통신사의 비와 벽화 등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일본에 전파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통신사 여정의 역사적인 흔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둘러본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는 쓰시마 섬에 살던 조선인들이 덕혜옹주의 결혼을 봉축하는 의미로 세웠다고 한다. 고종 황제의 딸이던 덕혜옹주는 치욕의 역사 속에서 1931년 5월 쓰시마 섬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하였고 다음해인 1932년 8월 14일 딸 정혜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삶이 순탄치 못하였고 후에 딸도 잃고 이혼을 했다. 고국에 돌아와 외롭게 병마와 싸우며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의 일생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념비라 하였지만 덕혜옹주의 삶을 떠올리며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대마도에서의 일정은 최익현 선생님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수선사는 백제의 비구니 법묘 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진 절이다. 한국인들은 대마도 이즈하라를 방문할 때 이곳 ‘슈젠지’를 꼭 방문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즈하라 항에서 가깝기도 가깝지만 이곳이 바로 구한말 꼿꼿한 기개로 비분강개의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순직하신 최 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선사에 갔을 때 순국비 앞에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올려놓은 술과 음식이 놓여 있었다. 조그마한 바구니에 동전들이 가득했다. 나도 가지고 간 간식거리와 동전을 올려놓고 한참을 고개 숙여 선생님의 나라를 위하는 높은 뜻을 마음 깊이 새겼다.

곧 있으면 삼일절이다. 뱃길로 두 시간이면 닿을 곳에 있는 가깝고도 가까운 일본은 우리 역사 속에서는 언제나 결코 가까울 수 없는 슬픔과 사연이 많은 먼 나라이다. 내가 둘러본 대마도 역시 그렇게 아픈 곳이었다. 드러내기가 어려운 슬픈 역사를 가진 곳에서 잠시나마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본과의 관계가 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돌아봤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슬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앞으로 우리의 역사가 다시는 이런 굴욕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또 대한민국이 먼저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보다 힘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