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은 독자 (각화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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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우리가족은 전라남도 곡성군 태안사에 있는 경찰 충혼탑으로 향했습니다. 태안사 경찰 충혼탑은 1950년 8월 6일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하신 경찰관 48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또한 매년 8월 6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태안사로 들어가는 곳의 경치는 숲이 우거져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북한군과 우리 경찰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아픔이 있는 곳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충혼탑에 도착한 우리는 분향을 하고 묵념을 했습니다. 분향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분향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태안사 경찰 작전 참전 동지회의 회장이신 권문주O(83)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권문주 할아버지는 6.25당시 순경이셨다고 합니다. 그분께 그 당시의 이야기에 대해 여쭈어 보았습니다. 1950년 7월에 압록을 지나가려는 북한군의 길을 막기 위해 다리를 끊고 태안사에 작전부대를 설치하고 북한군을 기습 공격하여 많은 인민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8월 6일에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48영의 경찰이 희생되었지만 마지막까지 이곳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싸웠던 인민군의 나이가 8-10세 어린아이였다는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총, 칼을 들고 싸웠다는 게 큰 충격 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싸울 수 있었는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차에서 여러 분의 할아버지들께서 내리시더니 서로 인사를 나누시고 충혼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충혼탑으로 따라갔습니다. 할아버지들께서는 충혼탑에서 묵념을 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대부분 80-90세 할아버지들이라고 합니다.
회장 할아버지께서는 이 분들이 모두 곡성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고 매년 6월 6일과 8월 6일 2번 오신다고 하십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셔서 계단을 오르시는데 부축을 받을 정도로 몸이 힘든 상태셨지만 올 수 있다는 게 기쁨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오리라고 말씀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같이 싸웠던 전우를 잊지 않으시고 보러 오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벌써 60년이 되었는데도 할아버지들께서는 전쟁터에서 함께 했던 전우들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6.25에 대해 그동안 아무 관심도 없었던 제가 부끄러웠고 앞으로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두 번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태양이 뜨거운 날씨였지만 충혼탑 앞에서 할아버지들께서는 오랜만에 만나셨는지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건강한 모습으로 올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충혼탑을 내려왔습니다.
정영은 독자 (각화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