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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독자 (인천천마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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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로 빠져봅시다.

지난 7월 26일 인천시 남구 문학동 349에 있는 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를 보러 갔다. 예전 강화향교를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많이 훼손이 된 채 문 닫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는 그렇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설명 해주시는 분에게 부탁하여 시작한 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의 탐색했다. 안내원은 인천의 옛이름 ‘미추홀’부터 태종 임금 때의 인천으로 변경되기까지의 설명을 해주셨다. 드라마 ‘주몽’에서 나왔던 비류와 온조왕자의 얘기도 하셨다. 주몽의 아들인 온조는 십제라는 나라를 세우고 비류는 미추홀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미추홀은 땅에 습기가 많아 농사가 잘 되질 않게 된다. 그후 동생과 힘을 합치게 된다.

그리고 도호부청사의 ‘청사’라는 단어보다는 ‘관아’가 맞는 명칭이라며 고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셨다. 도호부청사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번의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으며 문은 가운데의 큰 문과 양쪽 2개의 작은 문으로 되어 있었다. 가운데는 암행어사나 임금님의 서찰을 전달하는 사신 등 중요한 인물들이 다니는 문이라고 하셨다. 양쪽의 문은 동입, 서출이라하여 들어갈때는 동쪽으로 나올때는 서쪽으로 다닌다고 하였다.

옛날 부사들은 경찰의 역할, 공정한 재판, 세금을 걷는 역할, 행정, 군사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부사는 3~5년의 임기이며 10개 면 관리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연필모양의 십각기둥이 있었다. 거기에는 1대부터 355대까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부사의 집무실이던 동헌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객사. 객사는 임금의 위패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서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보다도 격이 높았으며 그런 만큼 관아 시설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하며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설명을 해주시는 분이 "여기서 아래를 한 번 내려다 보세요"라는 말씀하셔서 보니 도호부청사가 한눈에 보였다.


객사를 내려 나무 사이의 사잇길로 걸어가니 인천향교가 보였다. 돌계단을 오르는 곳은 무당벌레와 비슷하게 생긴 중국매미가 있었다. 번식력이 강해 자꾸 생겨나고 있단다. 서당은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곳인데 반해 향교는 중.고등학생들이 다녔던 곳이라 말할 수 있다.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고려와 조선의 교육기관이라고 한다. 전국 각지에 설치하였던 관학으로 멀리서 다니기 힘든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도 있었다. 양반과 평민들이 따로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과거시험에 떨어져도 그대로 남아 공부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 학생의 경우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인천향교는 얼마 전 공사에 들어가 앙상한 기둥만 남겨져 있었는데, 복원은 언제 마무리 될지 아직 모르신다고 하셨다.

해설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후 내려온 길에서 널뛰기와 줄다리기, 활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 우리나라의 전통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탈과 풍물패가 되어 볼 수 있는 징, 장구, 꽹과리와 다듬이가 있어 방망이로 두들겨 보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고리던지기, 비석치기등을 하였다. 또한 넓은 평상에는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쌍륙이라는 놀이도 있었다.

도호부청사는 2002년 월드컵경기의 준비로 지금의 자리에 복원이 되었다는 사실과 인천향교 즉 향교에는 항상 숯은행나무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선정비로 인해 비석치기 놀이가 생겨 났다는 사실을 안 하루였다.

박완수 독자 (인천천마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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