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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정 독자 (부산몰운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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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을 보고

8.15 광복절, 이 날을 위하여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다. 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시다.

지난 6월에는 부산 KBS홀에서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 공연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밝인 애국혼의 표상, 민족의 자주독립을 향한 겨레의 태양, 인류 평화의 등불로서 불꽃같은 삶을 사시다 마감하신 안중근 의사의 거룩한 생애를 담은 연극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나라사랑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연극이였다.

김의경 극본, 표재순 연출에 최수종, 정혜선, 기정수, 원근희, 문경민, 양창완, 하성민, 조승연 씨 등 유명배우와 연극인들이 참여하여 안중근 의사 100년을 기념한 연극이었다. 이 연극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을 출발하여 부산, 광주, 대전, 중국(하얼빈), 일본(동경)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은 안중근 의사의 연보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읍 광석동에서 아버지 안태훈과 어머니 조 부인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태어날 때 등에 북두 칠성과 흡사한 모양의 점 7개가 있어 북두 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하여 이름을 응칠이라고 하였다.

1885년 7세 고향 해주를 떠나 신천군 청계동 산골로 이사한다. 집안에 마련된 서당에서 유학을 수학하고 숙부와 포수꾼을 따라 단총을 지니고 수렵에 나섰다고 한다. 사격술도 뛰어나서 발군의 명사수로 이름을 날린다.

1894년 16세 재령군 신환면 김홍섭의 딸 김아려 (당시 17세)와 결혼하였다. 동학 농민 전쟁 당시 안태훈이 일으킨 의려에서 선봉으로 활약했다. 동학 농민 전쟁 직후 수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회복하였다.

1897년 19세 안태훈이 마렴에 있던 프랑스인 Joseph Wilhelem (한국명: 홍석구) 신부를 청계동으로 초빙하여 일가족 30여 명이 홍신부로 부터 영세를 받았다. 이 때 안중근은 토마스란 영세명을 받았다. 이후 안중근은 홍신부로부터 교리 공부와 함께 프랑스어를 배우며 포교에도 힘을 쏟았다.

1905년 27세 을사 5조약의 늑결로 망구의 현실이 급박해 지면서 구국의 방책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이때 그의 계획은 상해와 산동지방의 한인들을 모아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상해의 천주교 관계자들을 통해 일제 침탈의 실상을 널리 알려 외교적 수단을 강구하여 국권 회복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상해 등지의 유력 한인들 및 외국인 신부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1906년 28세 청계동을 떠나 평남 진남포로 이사했다. 평양에서 한재호, 안병운 등과 석탄을 채굴하여 판매하는 삼합의 라는 광산 회사를 서립하여 사업을 벌이는 한편 지난포에서 삼흥 학교를 통해 굥육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프랑스 신부가 경영하던 천주교 계통의 학교인 ‘돈의 하교’를 인수하여 교과교육에 교련시간을 배정하고 집총훈련을 통한 군대식 훈련을 실시했다.

1907년 29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국채 보상회 관서 지부를 설치하여 국채 보상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일제가 고종을 퇴위시키고 대한 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국외에 의병부대를 창설하기 위하여 간도를 겨쳐 블라디보스톡에서 활동했다.

1908년 초 30세 노령 연추 (노에키에프스크)에서 의병 부대를 창설하기 위한 조직으로 ‘동인회’를 조직하여 회장에는 최재형을 추대하고, 노령 일대의 한인촌을 다닌면서 유세를 통해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1909년 31세 의병의 재기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연추로 돌아와 의병재기운동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왼손 무명지를 끊어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의 네 글자를 혈서하고 의병의 재기를 기약했다.

1910년 32세 제 1회 공판이 시작되었다. 1962년 3월 1일, 안중근 의사 영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1970년 10월 26일, 서울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지만 광복절을 맞아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망국의 한으로 나라가 정말 힘들었을 때 온 몸을 던져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국민들 가슴에 자주독립을 외칠수 있었던 의지와 용기를 불어 넣어주신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 민족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 볼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방현정 독자 (부산몰운대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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