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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추억 속의 설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설날을 전후하여 20여 일을 온통 들뜬 기분으로 지냈다. 설날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머리를 깎고 설빔으로 새 양말이나 바지 등을 샀다. 산에 올라가 잔 솔가지를 꺾어다가 초가지붕에 던져 올렸다. 짚으로 이엉을 두른 지붕이 여름 장마에 썪으면 노래기와 같은 벌레가 많이 생긴다.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서 푸른 기상이 넘치는 솔가지를 지붕에 듬성듬성 올려놓는 것이다. 섣달그믐 날 밤에는 집 안팎을 등불로 환히 밝히고 새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떡가래를 썰다보면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밤을 까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자정 무렵 쏟아지는 잠을 쫓지 못해 등잔불 옆에서 꾸벅꾸벅 졸면, 할머니께서는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흔들어 깨웠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소중한 날 밤에 쿨쿨 자지 말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일을 구상하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으로 갈아입은 후 웃어른들께 큰절을 올리고 형제자매들과도 맞절을 나눴다. 세뱃돈은 외상이거나 누런 10원 짜리 동전 하나였다. 돈 가뭄이 심한 농촌에서 세뱃돈은 라디오에서나 들어 보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나의 일가친척은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일가가 모두 모여 먼저 큰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 형제의 서열에 따라 각 집을 순회하며 차례를 지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집에서 차례가 끝나는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차례를 지낼 때마다 음식을 먹고 음복을 하니 배는 맹꽁이처럼 부풀었다.


차례를 마치자마자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노인들께 세배를 드렸다. 대여섯 집을 돌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해지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꼬마들이 기특하다고 떡과 과일을 냈다. 세뱃돈 대신이다. 그러니 내 배는 점점 더 남산만 해졌다. 집에 돌아오면 시끌벅적했다. 마을의 어른들이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나서 거나하게 취했기 때문이다. 날씨는 문고리가 쩍쩍 얼어붙을 만큼 추운데 어머니는 떡국과 안주를 꾸려내느라고 종종걸음을 치셨다. 그러면서도 싫은 기색은 없었다. 이런 순회 세배는 일주일 가량 계속되었다. 우리가 다른 동네의 친척에 세배를 가거나 그들이 세배를 하러 찾아왔다.

설날이면 모처럼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흥겨운 민속놀이도 펼쳐진다. 어른들은 척사대회라고 하여 내기 윷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겨우내 끼고 살았던 연을 높이 띄워서 하늘나라로 보냈다. 멀리 그리고 높이 연을 날리고 친구들 끼리 연줄을 서로 붙이치며 연싸움을 하며 추위를 잊곤 했다.


설날이 지나면 어른들은 토정비결을 보며 신년 운수를 보고 한해 복을 기원하고 액을 땜하려 한다. 아이들도 밀린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개학이 벌써 며칠 앞으로 다가왔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50여 년 전의 설날 풍경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 사진 위 : 안동의 설날 / 푸른누리 이주현 기자>

< 사진 아래 : 윷놀이 / 한국 관광공사 >


정재정(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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