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독자 (대구신월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57 / 조회수 : 1543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면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으뜸 가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낮에는 덥지도 춥지도 않는 적당한 기온을 유지해 줄 뿐 아니라, 논과 밭에서는 봄과 여름 내내 땀 흘리신 농부 아저씨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겨 주는 참 너그러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을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지난 11월 7일, 단감과 홍시로 유명한 작은 도시 청도에 자리잡은 ‘운문사’를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위치한 사찰로 560년, 신라 진흥왕때 세워진 아주 역사가 깊은 사찰들 중에 하나이다. 이 곳 운문사 내에는 여승들에게 경학과 계율을 가르치는 운문 승가대학이 있다. 운문 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중 최대 규모로 현재도 260여 분의 여승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다.
깊은 역사와 함께 이름난 사찰이기도 하지만 멋진 경치로 유명한 운문사는 일요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소나무들이 가득한 ‘솔바람길’을 걸을 땐 매연과 공해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한번도 맡아 보지 못한 솔잎향을 잔뜩 마실 수 있었다. 어릴 때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나는 이런 자연이 주는 선물에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솔밭길을 지나 주변의 산과 계곡 등을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운문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운문사에는 보물 제 678호인 운문사 삼층석탑을 비롯해 국보급 문화재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만세루 옆의 반송인 ‘처진 소나무’는 천연 기념물로 정해진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 심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나무로 나이가 450~500년 정도된다.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달라서 처진 소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소나무를 보호하고 가꾸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뿌리 가장자리에 막걸리를 뿌려 준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술인 막걸리가 소나무에게는 굉장한 효력을 가진 영양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기와가 놓여진 처마에 알록달록 그려진 단층을 보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조상의 슬기로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부처님의 일대기가 벽화로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이제껏 가 본 사찰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양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삼층석탑’은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꾸밈이 없이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석탑이었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아름답고 고요한 사찰을 이곳 저곳 둘러보고 난 후, 돌담길을 따라 사찰을 내려 왔다. 주차장을 향해 내려 오던 중, 솔밭길에 심겨진 소나무의 줄기마다 깊이 패인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곳에 심겨진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그런 상처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기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상처난 소나무의 줄기를 만져 보았더니 현재 외과 수술을 받고 있다는 푯말을 보았다. 푯말에는 또한 이런 상처를 입은 소나무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소나무에 새겨진 V자 모양의 이들 상처는 일제 말기(1943~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로 동원하여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라는 글이었다. 비록 말 못하는 나무이지만 그 상처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무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나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가을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한 즐거운 나들이였지만,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장혜정 독자 (대구신월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