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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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청와대 어린이 기자단에게 특강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른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혹시 세대차이가 많이 나거나, 너무 어렵다고 하지 않을까? 어린 친구들이니까 딱딱한 뉴스에 나오는 나같은 사람보다는 발랄하고 재미난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는 아나운서가 좋지 않을까? 걱정은 끝이 없었죠.
늘 온 국민을 상대로 9시 뉴스를 진행하지만, 어린 친구들 앞에 서는 게 훨씬 많이 떨렸다면 믿으시겠어요? 특히 미래의 기자, 아나운서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혹시나 제가 실망감을 안겨주는 건 아닌지, 떨리고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걱정이었죠. ‘내가 저 나이 때쯤에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우리 친구들은 제 말에 정말로 귀를 기울여 줬습니다.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는 용어들도 많이 나왔지만 두 눈은 초롱초롱했죠. 질문할 때는 또 어땠나요. 아무도 질문을 안 하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서로 앞다퉈 손을 들고 질문하느라 1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저는 우리 친구들은 보면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언니(누나)가 어릴 때는 이렇게 많은 것을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뭔가 억눌리고, 주눅들어 있었죠.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호기심. 그리고 생각보다 질문의 수준도 매우 높았습니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앵커의 클로징 멘트에 대해 질문할 정도였으니까요. 속으로 깜짝 놀랐죠.
진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 투명하고 합리적이 될 겁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친구들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에 싸움은 줄어들 겁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똑똑한 친구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세상은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 어린 시절부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 거 기억하나요? 그 때 미처 덧붙이지 못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대한민국의 핵심인 ‘청와대’를 가봤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도 ‘어린이 기자단’을 해봤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청와대를 못 가봤으니 우리 친구들은 일찍 큰 추억을 만든 것이죠. 거기서 느꼈던 것들, 어른이 될 때까지 차곡차곡 쌓아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조수빈 KBS 9시 뉴스 앵커
조수빈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