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1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채은 독자 (서울남산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37 / 조회수 : 1435

뉴스 공유하기 C
					로그 미투데이 트위터 Facebook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무한한 애국심을 느끼다.


지난 7월 17일,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와 안중근 의사 기념관(설, 추석 제외 연중 무휴)을 다녀왔다. 방학 동안 우리나라 역사공부에 중점을 두어, 애국심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번 방학은 어느 때보다 더욱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으면 한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역시 남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집과 매우 가깝다. 거리도 적절하고 유익한 곳을 왜 지금에야 왔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가는 길에 푸른 은행나무, 소나무가 엄마와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기념관 내에는 관람객이 우리뿐이었다. 덕분에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전에도 여러 번 와보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소란 때문에 역사에 대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우선 영상실에서 안중근 선생님의 생애에 관련된 영상물을 보았다. 보는 이의 주먹을 쥐게 할 정도로 일제의 극심한 간섭과 학대는 도를 넘어선 고문 그 자체였다. 선생님이 받으신 고통이 마음속에 전해져서 슬픔이 눈물로 차올랐다.

안중근 선생님께서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셨다. 18세 때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셨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엔 청나라로 건너가 나라 구할 길을 찾으셨다. 선생님께서는 있는 재산 모두를 가지고 소학교를 세우시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쓰셨다. 강제 합병 후에는 의병운동을 하시며 독립하는 데 크게 힘쓰셨다. 31세가 되시던 때에는 11명의 동지와 손가락을 자른 뒤, 그 피로 ‘대한 독립’을 쓰시고 독립에 혼을 바칠 것을 다짐하셨다. 32세 때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우리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총으로 쐈다. 세 발의 총성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안중근 선생님께서는 일본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으셨다. 감옥 안에서 선생님께서는 <안응칠 역사>를 완성하고 <동양평화론>을 쓰시다가 결국 교수형을 받아 순국하셨다. 안중근 선생님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발굴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이들의 슬픔을 자아내고 있다.


선생님의 희생으로 우리나라는 독립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욱 바로 잡혔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말고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많으시다. 아마 그 분들 때문에 우리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안중근 기념관에 가보니 애국심이 더욱 자라났다. 선생님의 숭고함과 애국심을 본받아서 나도 나중에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푸른누리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을 때 독립운동가 분들께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신다면 더욱 뿌듯해 하실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났기에 나는 한없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김채은 독자 (서울남산초등학교 / 6학년)

추천 리스트 프린트

렌즈속 세상

놀이터


Template_ Compiler Error #10: cannot write compiled file "/web/webapp/data/ipress/iprdata7/e3/school.president.go.kr_paper/template/kr/_compile/group/29/1/bottom.htm.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