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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2월 2일

문화속으로 추천 리스트 프린트

정혜인 나누리기자 (서울가주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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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조선황실 의궤와 도서’ 체험학습에 참여 했어요

작년 12월 27일부터 2월 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의궤와 도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실 도서 150종 1,205책이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귀한 도서가 우리에게 돌아 오면서 소유권 또한 우리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젠 절대로 뺏기지 않을 우리의 기록문화유산입니다.

‘다시 찾은 우리의 보물, 조선왕실도서’ 특별전을 연계한 겨울방학프로그램으로 활동지도 풀어보고 의궤 모양의 필통을 꾸미는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체험교육실에 10가족이 모였습니다. 5조에 배정되어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했고 다른 친구들도 부모님과 함께 수업을 기다렸습니다.


먼저 PPT로 수업을 하기 전에 선생님께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해서 알려주셨는데 바로 "나라를 잃어 버리면 역사와 문화도 뺏기고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서 이처럼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며 우리들에게 나라를 잃는 일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라 잃은 역사의 아픔이 너무 커서 들을 때마다 나라를 찾은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애국자들의 목숨 건 희생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이어서 선생님께서는 조선의 도서 편찬과 관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600년 전의 조선은 기록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책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보의 바탕이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악보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들은 책을 수집하고 편찬하고 보급과 보관, 관리에 큰 힘을 썼습니다. 예로 세종대왕님의 집현전이 있고 세조의 홍문관, 정조의 규장각, 지방사고 외유장각 등만 보아도 얼마나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는데 힘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예절의 규범의 꽃인 의궤는 의식의 궤범으로 국가전례의 따라야 할 규범을 기록한 도서입니다. 왜 이 규범이 중요하냐면 조선이라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정하게 표현을 하고 정해서 지켰기 때문에 나라가 더 강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이 기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우리의 옛 역사를 우리들이 지금도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꼼꼼히 기록을 남긴 나라가 없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십니다. 자랑스럽게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책을 살펴 보면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승정원일기, 일성록, 동의보감, 훈민정음이 있습니다.

책의 관리에도 힘썼는데 책마다 찍혀 있는 도장만 보아도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자의 교육을 위한 관청의 시강원, 궁궐의 도서를 관리 했던 홍문관, 고종의 집무실로도 사용되었던 희정당 등 도장이 찍혀 있어서 관리에도 세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규장각은 정조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좋은 역사, 글, 생각 등을 책을 바탕으로 하겠다고 해서 만들었고 조선 후기의 최고의 국립도서관이었습니다. 돌아온 도서 중 여사제강도 고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편년사로서 중요한 도서입니다. 심양일기도 중요한 도서인데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가 인질로 끌려가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기록물이고, 이충무공전서도 이순신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기록물도 돌아 왔습니다. 또한 귀한 책으로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갑오군정실기도 돌아왔는데 우리 나라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 기록이 되어 있는 귀한 자료로 학자들께서 연구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 연구가 끝나면 우리들이 우리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이번의 반환들이 우리에게 주는 큰 의미는 의궤와 도서자료가 많을수록 우리가 알 수 있는 역사 내용도 많아져서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궤 같은 경우는 국가의 모든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꼼꼼히 잘 남겨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똑같이 조선의 행사를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기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의궤를 보면 크게 어람용과 분상용으로 나누어 지는데 어람용은 왕이 보는 책으로 초주지로 만들어 비단으로 곱게 싸여 있고 책 안에도 붉은 줄이 그어져 있고 정서로 쓴 해서체로 왕이 편히 읽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분상용은 저주지로 만들어 삼베무명을 썼고 검은색 줄로 되어 있습니다. 행서체나 반서초체로 흘려 썼고, 색칠을 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 꼼꼼히 기록한 어람용과는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으로 황제국이 되었을 때에는 어보의 손잡이도 바뀌었는데 왕일 때는 거북이 모양이었지만 황제가 되었을 때는 손잡이가 용의 모양이어서 우리나라가 황실국가임을 알리는 어보가 찍힌 도서도 이번 전시로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설명을 다 들은 후 우리들은 모두 특별전시실에 들러 선생님을 따라 강의실에서 들은대로 활동지를 기록하면서 눈으로도 직접 돌아온 우리의 귀한 기록유산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이 자료들이 돌아왔는지 기특하기만 하고 돌아오게 노력한 분들께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시실에서 만난 귀한 자료들 중 선원전은 어진, 즉 임금의 초상화를 보관하던 곳인데 옛날에는 용안을 함부로 볼 수 없었고 용안을 그릴 때도 시간과 날이 정해져서 그렸을 정도로 어진을 함부로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진을 그리는 과정이나 물감의 양과 말리는 기간까지 모두 의궤에 기록을 해 두어서 의궤가 얼마나 기록을 철저히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의궤를 어람용과 분상용으로 6~8권을 만들었는데 대한제국 이후 즉 황제국이 되어서는 8~12권까지 만들었습니다. 황제가 보는 의궤가 늘고 또한 나라의 관청이 더 많아져서 더 많은 의궤를 만들어 보관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의궤들은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전의 것은 소실이 되어 보기 어렵고 그 후의 의궤들만 남아 있습니다. 역시 나라를 뺏기는 것만큼이나 전쟁도 우리의 유산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들이 만든 필통에 그린 조선의 왕실잔치인 ‘신축진찬의궤’는 현종의 계비인 효정왕후의 71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 의궤입니다. 요즘은 70세가 넘는 건 보통이지만 옛날에는 아주 오래 장수한 것이어서 3일 밤낮으로 잔치를 해서 축하했다고 해 좀 놀랐습니다. 100살까지 사는 요즘을 보면 별로 나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시 관람 후 돌아와서 우리들은 필통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다 만든 후 아직도 14만점이나 있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발표도 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유산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전세계 언어로 번역을 해서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이나 우리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유산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알리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우리의 유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정혜인 나누리기자 (서울가주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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