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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8월 16일

테마-광복,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 추천 리스트 프린트

박요한 기자 (서울은로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3 / 조회수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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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청포도’ 그리고 나 이육삼

이육사 선생님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이 기사는 기자가 과거로 돌아가 이육사 선생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각색하여 전개했습니다. 모든 내용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 졌습니다. 더불어 독립투사 시인 이육사, 장진홍 의사님을 추모합니다.


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요한! 이 시 좀 읽어 보게나?”


밤새 뒤척이더니 새벽같이 나를 깨웠다. 원록의 눈이 빨간 걸 보니 밤을 지새운 것이 분명했다. 원록과 나는 같이 투옥된 것이 두 번째이다.


“원록, 자네는 우리 조선을 해방할 초인을 기다리고 있구먼. 그래 우리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거야. 자네와 나 이렇게 한 줌에 씨가 되어 조국을 위해서 뿌려지는 거지.”


문학은 마음에 씨를 뿌린다. 이육사가 영원히 잠이 들던 그날, 나의 영혼은 일제를 향한 독립투쟁의 결심의 씨를 마음에 뿌렸다.


나의 동지 이원록,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1932년 난징에 있는 ‘조선군사간부학교’에서였다. 17차례나 감옥에서 보낸 우리는 감옥에서 이름이 없었다. 죄수번호 ‘264’와 ‘263’이 우리 이름이었다. 조선군사간부학교에서도 우리는 1,2등을 서로 다투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잠시라도 학습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진 훈련 이후에도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끊임없이 공부했다. 우리가 배치 받은 ‘의열단’은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서로 고향도 이름도 학교도 몰랐다. 그리고 의열단은 문서도 없었다. 모든 것이 비밀로 부쳐진 비밀첩보기관이었다. 일본에 붙잡혔을 때 고문에 못 이겨 비밀을 발설하는 것을 대비한 것이었다. 아마도 ‘조선군사간부학교’에서 우리가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학자집안, 그리고 조용한 성품,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 모두 다 닮았다. 한 가지 더, 빼앗긴 조국을 보고 우린 학문에만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첩보기관이었던 ‘의열단’에 소속된 이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이원록이 이육사가 되고 나 박요한이 이육삼이 된 사건이 있었다. 1927년 여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지령이 떨어졌다. 독립투사 장진홍의사를 도우라는 것이었다. 장진홍의사는 일본의 관공서, 은행 등 공공기관을 폭파함으로 일본의 혼란을 부추기려 폭탄제조 전문가로부터 제조기술을 배웠다. 장진홍의사는 폭탄을 꿀벌 통에 넣어 위장했다.


“이것이 무엇이오?”

“조선은행에 빌린 돈으로 꿀벌농사가 번창했어요.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장진홍 의사는 친절하게 대답하였다. 이육사와 나는 사전에 조선은행의 설계도에 따라 폭파지점을 미리 살피고 장신홍의사의 탈출로를 만들고 있었다.


“폭탄이다!”
화약 냄새를 이상히 여긴 여직원이 거의 타들어간 다이너마이트를 보 고 소리를 질렀다. 폭탄의 선을 자르고 네 개의 벌꿀 통 꾸러미 중 나머지 세계를 밖으로 빨리 이동하는 동안 폭탄은 폭파되었다.


“꽝, 꽈꽝…….”


모든 유리창이 부서지고 폭음이 대구를 울렸다. 민족혼을 깨우는 순간이었다. 3.1운동 이후 치밀한 탄압으로 잠들어 있던 순간이었다. 폭탄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제지하던 이육사와 나는 몸싸움을 하였다. 머리에 둔탁한 것을 맞은 후 깨어난 곳은 형무소였다. 이육사는 장진홍의사의 탈출로를 만들다가 함께 붙들렸다.


“요한동지, 정신이 드나? 치료도 못 받고 감옥에 갇히다니…….”


이육사는 내 몸을 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육사의 울음을 두 번 보았다. 딸 ‘옥비’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울던 육사는 나를 안고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나를 위한 울음을 넘어 이 조국을 위해 흐느끼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날 이후 우연히 같은 형무소에 우린 만났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고문으로 이육사는 한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영원한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시 ‘청포도’를 낭송해주었다. 그의 시신은 들었을까? 고향에 있는 그의 딸과 그의 가족은 들었을까? 해방조국의 아름다운 계절에 함께 청포도의 싱그러운 웃음으로 함께 하길 원했던 간절한 소망을…….

박요한 기자 (서울은로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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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성
성남신기초등학교 / 6학년
2012-08-16 22:31:27
| 추천! 아~~ 정말 동지애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기사입니다. 감동적인 다큐를 감상하는 것처럼 정말 훌륭하고 의미있는 기사를 잘 보았습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하겠습니다~~ 박요한 기자님!! 방학 마무리 잘 합시다^&^
박요한
서울은로초등학교 / 6학년
2012-08-21 16:44:22
| 남윤성 기자님, 정말 선플왕 답습니다. 기자님의 댓글 덕분에 저도 더 열심히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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