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독자 (예일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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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평구에 의미 있고 멋진 공원이 얼마전에 개장하였다. 지난 6월 22일 개장한 ‘은평 평화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공원은 녹지생태 구축 및 복합 문화 공간 창출, 6.25 전사자의 동상 건립, 숭고한 희생 정신 계승, 지하주차장 건설을 통한 주차난 해소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윌리엄 해밀턴 쇼 (LT.William Hamiton Shaw 한국명-서위렴) 동상 제막식이 고인의 유가족과 관계자분들이 모인 가운데 함께 열렸다.
윌리엄 해밀턴 쇼는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돌아가신 분으로 이 때의 계급은 소위였다. 윌리엄 소위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로 활동하던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22일 평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1943 미국 해군 소위로 임관되어 제 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한국에서 진해 해군사관학교 민간인 교관과 한국 해양경비대 창설에 기여하여 대한민국 국군 태동기를 이끌어 갔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중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내가 태어난 제 2의 조국을 외면할 수 없다"며 미국 해군에 재입대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수행했다.
이렇게 본인의 임무가 완수됐음에도 선발대로 상륙해 김포반도, 행주산성, 신촌, 노고산, 그리고 연이은 녹번리 전투에서 후방정찰에 나섰다 적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평소 그는 한국 사랑 정신에 따라 마포 양회진 선교사묘역에 묻혔다.
은평구는 6.25 60주년과 윌리엄소위 전사 60주년을 맞아 희생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후세에 널리 알리고 역사적인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은평구 녹번동 평화 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희생 정신을 잊기엔 그의 사랑이 너무 컸기에 대한민국이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나 보답하기 위해 공원 이름을 은평 평화공원으로 정하였다.
공원에서의 윌리엄 소위는 비록 동상이지만 아직도 한국을 잊지 않고 사랑이 가득찬 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윌리엄 소위는 한국을 고향으로 우리 곁으로 달려온 것이며 목숨을 받쳐 우리를 위해 싸워준 아주 훌륭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푸른누리 기자단도 윌리엄 해밀턴 쇼처럼 다른 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한국 사랑과 희생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앞으로의 은평평화공원은 녹색 휴게 공원으로 마땅히 쉴 곳이 없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이 될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고 있겠어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아요."
( 1950.9.15 인천상륙작전 후 이성호 해군 중령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김대진 독자 (예일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