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추천 리스트 프린트

최정문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164 / 조회수 : 998

뉴스 공유하기 C
					로그 미투데이 트위터 Facebook

푸른 산속의 서울 성곽, 숙정문 그리고 창의문

집 밖을 볼 때마다 항상 눈에 들어오는 북악산. 우리 가족에게는 평범한 뒷산이기도 하고, 웅장한 푸른 산이기도 했습니다. 주말마다 어떤 성곽을 타고 등산을 갈 때, 그 순간이 상쾌하기만 했습니다. 와룡공원을 지나, 삼청공원을 지나, 말바위 쉼터를 지나, 촛대바위를 지나... 그 때 그 먼 거리를 따르던 그 성곽은 서울성곽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을 탈 때 만나는 두 개의 문은 숙정문과 창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공부도 할 겸 조사해 보았습니다.


서울성곽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적 제10호의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조선 시대 태조 5년 때 지어진 성곽이라 합니다.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을 때, 전쟁을 대비하여 지은 성곽입니다. 이 성곽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2년 뒤, 1396년에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지었습니다.


26년 후, 세종 4년인 1422년에 세종대왕은 서울성곽 보수공사를 했습니다. 이 때 서울 인구가 약 10만 명이었는데,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한 것을 보면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렇게 서울성곽은 여러 차례의 공사를 거쳤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과 전차의 등장으로 허물어지게 되었답니다. 다행히 1975년부터 복원을 했습니다. 현재 서울성곽은 북악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타원형으로 잇고 높이는 12m, 둘레는 약 18km입니다.



서울성곽을 타고 가다 보면 숙정문도 나옵니다. 숙정문은 따로 문화재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고유 문화 자취인 것은 확실합니다.



숭례문이 남대문이라면 숙정문은 서울의 북대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숭례문의 뜻이 ‘예를 숭상한다’인 것에 대비해 숙정문은 ‘엄숙하게 다스린다’란 뜻을 지닙니다. 서울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지만, 연산군 10년인 1504년에 성곽을 보수하며 옮겨졌습니다.



숙정문에서 오래 가다 보면 창의문이 나옵니다. 창의문은 서울의 4대문인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그리고 북쪽의 숙정문에서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에 위치한 북서문입니다.


창의문의 뜻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 입니다. 4대문 사이의 4소문 중의 하나인 창의문 역시 조그만 우리 민족의 자취 중 하나로, 역시 소중한 존재입니다.


푸르름으로 빛나는 북악산. 이렇게 뜻있게 등산을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상쾌함도 상쾌함이었지만, 뜻있는 이번 시간이 귀중히 여겨졌습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우리의 서울성곽, 숙정문, 그리고 창의문!








최정문 기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 5학년)

추천 리스트 프린트

세상과사람

나무야 고맙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
이유미 박사

대구의 수호천사를 만나다.

김성현 기자

사진이야기

놀이터

[동화 이야기]
달걀대신 삶은 시계 기탄교육
[만화 확대경]
성이의 별별이야기 9 황중환


Template_ Compiler Error #10: cannot write compiled file "/web/webapp/data/ipress/iprdata7/e3/school.president.go.kr_paper/template/kr/_compile/group/21/1/bottom.htm.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