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 나누리기자 (인천창신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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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누리 기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방학 보내고 있나요? 방학이라 방에만 있던 제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1월 8일, 인천시 중구 일본 마을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이 일본 마을은 우리나라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일본인들이 인천에 들어와 살던 마을입니다. 옛날 아픔의 기억이 떠올라 약간 거부감이 생기는 듯 했지만, 지금의 건축물과는 다른 건축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간 곳은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입니다. 이 건물은 옛날 일본 18은행이 있던 곳으로, 현재 市지정 유형문화재 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겉모습부터가 지금의 건물과는 약간 달라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전시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물포가 열리다’ 두 번째는 ‘개항기, 중구의 모습을 보다’ 세 번째는 ‘건물이 역사되어 근대를 말한다.’입니다. 근대 건물의 도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첫 번째, ‘제물포가 열리다’ 에서는 개항 당시 시대 상황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개항당시 우리나라(조선)는 대원군파와 민씨파간의 갈등이 심하였고, 강화도 조약과 제물포 조약 등 각 국의 외교조약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1892년 이화학당이 세워지고,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는 등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개항기, 중구의 모습을 보다’ 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구 건물 모형들이었습니다. 인천 우체국, 일본 제 1 은행, 제물포 구락부 등 다양한 건물이 미니어처처럼 있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이 구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계제도에 대한 것입니다. 조계제도는 일정한 지역범위 안에 외국인 전용 거주 지역을 설정해 그곳의 지방 행정권을 외국인에게 위임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조계는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제물포항을 중심으로 설치되었고 이것을 통해 서구식 건축물과 기잔 시설들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건물이 역사되어 근대를 말한다.’에서는 구 인천 모형과 방문기념 도장, 탁본체험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구 인천 모형을 보며 옛날 일본식 마을은 어땠는지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었고, 앞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각 건물 상세보기와, 각종 정보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답동성당인데, 지금도 존재하는 답동성당은 1897년 건립된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적벽돌을 주재료로 중앙과 양측의 탑상부에 설치된 뾰족 돔 및 정면의 아치창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출구로 나온 후 보니 인천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포토존이 있었고, 인천 근대 건축물의 부조들이 있어서 직접 만질 수 있었습니다.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저는 강화도 조약과 개방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이지만, 개방을 통한 우리 건축문화의 현대화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저희는 조상님들이 했던 아픔을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고, 우리 문화를 보존하면서 새롭게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야겠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장유정 나누리기자 (인천창신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