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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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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인 독자 (남성초등학교 / 5학년)

추천 : 28 / 조회수 :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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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무형문화재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를 소개합니다.

지난 부산 고등어축제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산 축제 때마다 공연하는 ‘부산농악팀’과 ‘구덕망께 터다지기 소리’가 부산시 서구가 보유하고 있는 무형문화재라는 것이었다.

부산 서구청에 직접 문화재 담당자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부산 "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 무형문화재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난 민속예술보존협회 담당자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하여 무형문화재에 대하여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여쭤보았다. 그곳의 담당선생님께선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으며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보도록 도와주셨다.



평일엔 학교시간 때문에 방문하기가 어려웠고 또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고 있으며, 토요일은 1주, 3주만 낮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해서 직접 방문은 힘들었다.

문화재 보유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싶었으나 계속되는 공연일정이 짜여 있어서 직접 만나 뵙기는 정말 어려웠다. 가을축제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면 꼭 방문해보기로 하고 담당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정보를 갖고 나름대로 무형문화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부산 "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는 부산 서구 대신공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산 농악’ , ‘다대포후리소리’ 의 전수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1991년에 개관한 시립예술관이다. 무형문화재 보유 종목으로 "부산농악"과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 "다대포후리소리"가 있는데 부산 서구에 지정된 것은 "부산농악"과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이다.

"부산 농악"은 1980년 2월 22일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 6호로 지정되었고,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는 2001년 10월 17일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 11호로 지정되었다. 부산농악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민중음악으로
처음에는 祭天儀式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남성초등학교(학교장 김종완) 가을 운동회 때마다 고학년들이 농악을 공연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는 생소해서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먼저 달구라는 것이 있는데 담장이나 집 및 기둥을 세울 터전의 연약한 땅을 견고하게 다질 때 사용하는 기구를 말하는 것이다.


달구란 둥근 나무 토막(나무 달구)이나 무게가 나는 넓적한 돌(돌달구) 또는 쇳덩이(쇠달구)에 4~5개의 손잡이를 만들거나 줄을 매어 만들어 여럿이 손잡이나 줄을 함께 끌어 올렸다가 갑자기 놓으면, 그것이 떨어져 지면에 부딪치면서 지반이 단단하게 다지는데, 이에 사용되는 작업 기구를 말하는 것이다.

영.호남지방에서는 달구를 망께라 하는데, 망께라는 말은 망께돌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 같다. 우리 민속놀이 중에 망께라는 돌이 있는데, 지름이 7cm가량의 둥글고 납작한 돌로써 던져놓은 엽전을 맞추어 엽전을 따먹는 놀이에 사용된 돌을 망께돌이라 하기 때문이다.


망께로 터를 다지는 일을 망께질 또는 달구질이라 하며, 망께질을 할 때 여러 사람이 일의 능률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부르는 소리를
망께소리(또는 달구소리)라 한다. 특히 묘혈(墓穴)에 입관한 다음 무덤을 다질 때 흙에 회를 섞어서 달구질하는 것을 경기도 지방에서는 회방아라 하며, 이 때 부르는 상두꾼의 소리를 회방아소리라 한다.


달구가 기계문명에 의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으며 약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그 잔형이 남아 전했으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 그러면 달구를 사용하여 담장이나 집 및 기둥을 세울 터전 다지기의 노동 행위는 언제쯤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에 대한 상고시대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그 역사는 유구하다 할 것이다.

"구덕망께 터다지기소리"는 광복이전 구덕산 아래 대신동 일대에서 망께질에 종사하였던 박수덕(朴洙德, 부산시 서대신동에 거주하다 사망. 96세(1994년 현재). 정호범(鄭好範, 동대신동2가34). 김상희(金商熙,1917~ 서대신동3가623). 심임수(沁任洙,1922~, 동대신동2가79-55)등 제씨의 증언에 의하면, 대신동 일대에서는 약 50년 전 전후까지 큰 집터를 다질 때 망께질을 하면서 터다지기 소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예로써 토성동 3가 1번지에 세워진 현 경남중학교(구,경남고교, 1942년 건립)와 동대신동 3가 1번지에 있는 현 경남고등학교(1956년 건립)의 교사(校舍)를 지을 때 망께로 터를 다지면서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를 불렀다고 한다. 1983년 4월 10일 부산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 발굴개시로 2008년 5월 2일 제14회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 발표회 등을 하면서 "구덕망께터다지기 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 문화재 보유 전승 체계를 보면 알듯이 최초 발굴인으로 시작해서 각 예능보유자들이 후진 양성에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또 현 학생들에게 끊이지 않도록 전수하고 있는 노력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화재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이렇게 "구덕망깨터다지기소리"에 대해서 알아보니 우리 조상들은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서로 힘을 모으면서 협동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옛날 기계 문명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집터를 다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함께 힘을 모아서 노래를 부르면서 흥겹게, 힘든 일을 슬기롭게, 헤쳐나갔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존경스럽다. 지금 문명이 발달하여 우리가 손쉽게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 근본에는 우리조상들의 슬기를 전수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일정이 바빠서 "구덕망께 터다지기소리" 문화재보유자분을 직접 뵙지 못해서 정말 아쉽지만 공원에 있는 "부산 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를 빠른 시일내에 방문해서 전수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역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최고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살리고 지키는데 애쓰시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분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의 옛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꼭 마음속에 간직해야겠다.


(사진자료 제공: 부산 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

 
이세정 | 교과서 읽는 기분이였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이다인 독자 (남성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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