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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2월

특집-창간1주년 추천 리스트 프린트

김률리 독자 (일동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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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푸른누리와 함께한 일들

푸른누리 기자로서 활동한지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이젠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고 있다. 내가 느끼기엔 엊그제가 푸른누리 1기 출범식을 했었던 것 같은데......

광주 촌사람이 서울에 있는 청와대에 가서 위대하신 대통령 할아버지를 만나 본 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 할아버지를 보았던 때는 출범식 때. 사회자 아저씨가 ’앗! 저기 대통령 할아버지가 오시네요!‘ 라는 말을 하자 난, 말 끝나기가 무섭게 눈을 할아버지 경호차로 돌렸다.우와! 정말 대통령 할아버지시네! 난 나를 꼬집어 보기도 하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너무 키가 작아서 할아버지를 태운 경호차 조차 볼 수 없었던 난 내가 답답하였다.

그래서 의자 위로 올라서서 겨우 할아버지께서 경호차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 후로 몇가지 출범식에 관한 안내와 공연이 있었고, 점점 분위기는 막바지를 향할 때,

그런데 이게 웬일 일까? 대통령 할아버지와의 단체사진???난 후다닥 줄을 섰지만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단체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다.다른 기자들이 할아버지와 가까이 찍으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단체사진이 끝난 후 2분간의 할아버지와의 악수시간.할아버지는 기자단들의 엄마 아빠와 악수하시느라 바쁘셨다.

할아버지는 모르셨겠지만, 난 2분동안 뒤에서 할아버지의 왼손을 계속 쭉 잡고 있었다.그런데할아버지도 나의 손을 꼬옥 잡고계셨다.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할아버지와 함께 마주보고 악수를 못했던 점이다.그래도 광주 촌사람이 대통령 할아버지와 2분동안 악수한 게 어디야...!

그러한 아쉬움을 알았는지 그 뒤로 또 한 번 청와대를 찾을 수있는 기회가 내게 다시금 찾아왔다.

중국 사천성 지진피해를 입고 부모를 잃어서 고아된 중국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뜻깊은행사를 한다고 하여 그 때 푸른누리 기자단들 중에서 중국어를 잘하는 기자들 10명을 뽑았는데 난 그 10명에 당당히 뽑혀 청와대에가서 대통령 할아버지를 다시 뵐 수가 있었다.

그때는 대통령 할아버지를 다시 뵐 수 있다는 기쁨이 컸지만, 중국 어린이들을 보는 순간 이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도 내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

장나라 언니의 사회로 즐거운 공연과 다과회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 다시 찾아온 사진촬영은 이때만큼은 난 대통령 할아버지라는 사실도 잊은채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이 말을 외치면서 할아버지 옆에 사진 찍으려는 순간에" 웨이 웨하오"라는 중국의 남자아이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는 것이다. 사실 이어린이가 대통령 할아버지께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편지를 써서 이 행사를 마련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난 둘레 둘레 주위를 둘러보다가 목표 지점 발견! 영부인 할머니 옆자리! 후다닥 난 순식간에 할머니 옆에 앉았다.그리고 나서 3분간의 휴식. 난 다시금 번뜩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인...!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달려가서 내 소개를 한 뒤 할아버지께 사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난 원래 사인 잘 안해준다".^^그런데 해주는 거야."역시 할아버지는 센스쟁이. 그 다음은 영부인 할머니.

할머니는 씽긋 웃으시더니 사인을 해주셨다.역시 할머니는 천사.

그 뒤로 우리집에는 대통령 할아버지와 영부인 할머니의 사인이 우리집 거실 중앙벽에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그래서 오는 사람마다 부러워하고, 날 대단하게 보기도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에게는 멈추지 않는 좋은 탐방에 기회가 또 찾아왔다. KBS 조수빈 아나운서 언니를 취재하는 행사였다.

처음으로 가보는 방송국이라 그런지 신기한게 너무나 많았던것 같다. 어떻게해서 방송이 나가는지 우리가 보고있는 방송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걸 알고,방송국에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대단하기만 했다.
난 조수빈 언니의 인터뷰 말중에서 어떤 기자가 질문을 이렇게 했다.

"언니는 아나운서가 되면서 가장 기뻤을 때가 언제였나요"?

"내가 이루고 싶었던 아나운서란 꿈을 이룰 수가 있어서 기뻤지만, 우리 가족이 어디가서 자식이 아나운서예요라고 자랑하실 때 내가 가족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는 게 가장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조수빈 언니의 외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언니의 9시 뉴스를 다보시고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그만큼 언니는 가족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고, 대견스런 자식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언니의 노력을, 리더쉽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기로 새삼 또 다짐을 해보게 되는 좋은 탐방이였다.

그뒤로EBS 보니하니 오디션에 뽑힌일.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 경호체험을 하면서 방송도 나오고, 신문 그리고 가장 어떨떨하게 만든 내 기사가 다음 뷰에 실리는 일들을 가슴설레며 겪게 되었다.

생에 처음 만져보는 권총이며 생에 처음 경호 훈련을 받아보고, 김인종 경호처장님께 직접 수료증도 받고, 마지막 체험날은 대통령 할아버지를 직접 경호하는 영광을 얻었으니 내가 봐도 난 운이 좋은 아이, 아니 대단한 아이가 된 느낌이였다.

그리고 집에 내려 왔을 때는 우리동네 유명한 아이가 되어 있었고, 난 그때의 그 기분을 뭐라 말할 수 없는 순간 내 어린 인생에 순식간에 쓰나미가 쓸고간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복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며칠 뒤에도 난 또 다른 경험을 하러 서울을 올라갔고,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 외로운 섬 독도에가서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타보는 헬기는 그야말로 짜릿했고,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 잊을 수가 없다.
난 지금까지 1년이란 시간속에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푸른누리기자 생활을 하면서 겪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성장하고,생각이 넓어지고,글솜씨가 늘어나고,때로는 친구들이나 주위분들에게 나나 우리 푸른누리기자들에게 욕먹게 하는게 싫어서 더 어른에게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친구들에게도 많은 배려하려고 노력했던 게 사실이다.

이렇듯 푸른누리는 나의 생각과 나의 주변을 변하게 해주었고, 잊지 못할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더 어른이 되어서도 나에게 푸른누리1기는 영원히 함께하는 친구가 될것이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칠때마다 좋은 채찍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률리 독자 (일동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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