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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2월

출동!푸른누리-구세군 추천 리스트 프린트

한결 독자 (서울월촌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52 / 조회수 :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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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자선냄비앞에 푸른누리가 떴다!

12월12일, 전국 6개의 지역의 자선냄비 앞에서는 우리 푸른누리 기자들이 많은 사람들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였다.특히, 서울지역에는 푸른누리 오케스트라가 특별 봉사 공연을 하게 되었다.

"We wish a merry christmas~♬"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찬 청계천 동아일보앞...10여명정도의 푸른누리 기자들이 플룻,바이올린등...악기와 노래로 길거리를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10곡의 곡으로 푸른누리 오케스트라단은 추운날씨가 괴롭히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하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청와대 어린이카페(네이버카페)에서 모여서 11일부터 1박 2일로(7명단원만...) 연습을 하고 1박 2일을 못한 단원은 아침 8시부터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였다. 점심도 굶은채, 동아일보 주위에 있는 기부하면 치킨,피자 등을 주는 곳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공연을 하였는데,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칫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기부를 하였다.

동아일보 앞에는 오케스트라 말고도 구세군체험에 뽑힌 친구들도 와 있었다. 이 기자들은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말을 하며 사랑을 전했고,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했다.


구세군에 더욱더 궁금해진 나는 구세군의 상징에 대해 알아보았다.

붉은방패는 구세군의 사회봉사 사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사용된다.
18세기가 끝나는 한 세기의 변화시점에서, 구세군의 상징 중 하나인 글자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 가로질러 장식된 은으로 만든 방패 모양이었는데, 이 방패는 특히, 전쟁 중의 수비부대에서 근무하였던 많은 구세군인들이 뱃지로 착용하였다.

보어 전쟁(Boer War, 1899-1902)이 끝난 직 후, 호주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지 카펜터(George Carpenter) 참령은 전쟁 중에 구세군인들이 착용한 이 은색 방패가 야간에 빛을 반사하여 적들에게 군대의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음을 걱정하였다. 그 결과, 은을 빨간 애나멜로 대체하고, 지금의 ‘빨간방패’가 되었다. 중앙엔 생명(life)의 빛을 의미하는 노란 태양이 있었고, 1882년에 별 모양으로 바뀌었다.

면류관은 구세군의 신앙, 즉 영적인 사역에 대한 의미있는 상징이다.
사관 윌리엄 엡돈(William Ebdon) 정위가 1878년 디자인하였고, 그 후에 그의 최초 디자인에 왕관 모양이 추가되었습니다. 면류관의 모양은 그 하나하나가 다음과 같은 구세군의 주요 교리를 상징하고 있다.
- 둥글게 주위를 둘러싼 태양은 성령의 빛과 불을 나타낸다.
- 십자가는 면류관의 중심에 위치하며 구세군인의 믿음을 나타낸다.
- 십자가 위의 글자 ‘S’는 죄로부터의 구원(Salvation)를 나타낸다.
- 양쪽의 칼들은 죄에 맞서는 싸움을 나타낸다.
- 탄환들(십자가 아래 일곱 개의 점)은 복음의 진리를 나타낸다.
- 왕관은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받을 하나님의 상을 나타낸다.
- 글자 “Blood & Fire(血火, 피와 불)”는 구세군의 표어다.
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모든 신자들을 정화하는 성령의 불을 나타낸다.

세계적으로 구세군기는 죄악와 사회 악에 대해 구세군이 싸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깃발의 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파란색 테두리는 성결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중앙의 노란별은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구세군기는 결혼식, 장례식, 행진, 야외집회, 병사입대식, 송별식, 은퇴식 등의 특별한 행사에 사용된다.
첫 구세군기의 창안은 1878년, 창립자 윌리암 뿌드의 부인 캐더린 뿌드 (Catherine Booth)에 의해 디자인 되었고,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영문에 처음 수여되었습니다. 그 당시 깃발의 중앙엔 생명(life)의 빛을 의미하는 노란 태양이 있었고, 1882년에 별 모양으로 바뀌었다.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은 구세군인들의 유니폼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구세군 사관, 병사들은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확연히 구분되는 복장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유니폼은 계속해서 그 형태가 바뀌어 왔다. 기독교 선교의 첫 복음 전도자들은 성직자 코트와 높은 모자, 검은 타이의 정장차림이었고 여성 들은 간소한 드레스와 퀘이커 교도식의 작은 모자를 썼다. 1878년 ‘기독교선교회’가 ‘구세군’으로 바뀜에 따라, 군대식의 유니폼이 채택 되어져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고, 유니폼은 빅토리아 시대 군대의 복장을 모델로 하였습니다.

구세군 최초의 ‘정위’가 된 엘리야 카드먼(Elijah Cadman)은 전직 굴뚝 청소부였는데, 그는 초기 회당에서 ‘모든 이들이 내가 철저하게 세상 구원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임을 알 수 있도록 유니폼을 착용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는 후에 군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게 되도록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의 구세군 유니폼은 수년간에 걸쳐 발전하여 온 것입니다. 구세군은 동시대의 감각을 반영하기 위하여 유니폼 스타일을 계속해서 검토하고 있다. 또한 각 나라 기후와 상황에 맞게, 국제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구세군의 브라스 밴드와 합창단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구세군에 브라스 밴드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 우연이었다. 최초의 구세군 악대는 1878년 영국 살리스배리(Salisbury)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감리교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찰스 프라이(Charles Fry)와 그의 세 아들이 최초의 구성원이었다.

살리스배리(Salisbury) 구세군 전도자들은 지역 폭력배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와중에서 구세군 전도자들이 시장과 같은 장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활동을 할 때, 프라이와 그의 아들들이 보디가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때 그들은 악기를 가져와서 노래에 반주를 하였으며, 이 우연한 상황 가운데 구세군 악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찰스 프라이 가족의 작은 밴드는 전도활동에 큰 성과를 가져다 주었고, 결국 프라이 가족은 사업을 처분하고 구세군 전임 음악가가 되었다. 그 이후, 몇년 사이에 브라스 밴드는 구세군이 있는 모든 나라에 빠르게 확장되었다.

나는 한번더 사랑과 나눔을 전하는 구세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추운날씨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구세군~!나는 이날 연주를 한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한 12일은 너무나도 나에게 갚진 날이었다.

한결 독자 (서울월촌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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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은 | 여오오오!! 결>< 메인 떳네>< 축하햇
임지원 | 우리가 우연히 창단된 구세군 밴드??
임소정 | 우와! 제가 생각 해 보아도 자랑스러운 날이었을것 같네요.
김승환 | 푸름누리 기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도 있었네. 나도 바이올린 하는데, 2기 푸른누리 기자로 뽑히면 내년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함께 봉사할동에 창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지수 | 와우~~ 언니 첨에 나한테 전화했을때 내가 악기를 많이 배워둘걸... 하는 생각 했었는데.. 멋지다!! 담엔 꼭 할수있기를......
권아현 | 뜻깊은 하루였겠어요~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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