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지 독자 (서울문덕초등학교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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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다녀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그러나 100만여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여 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 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간의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을 겪었다.
1953년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기회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99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포로들의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1983.12 포로수용소 잔존유적 문화재 지정(경상남도 지방문화재 자료 제99호)
·1995.10 포로수용소 유적자료 수집(미국:사진 및 문서, 전시물 1,300여점)
지금 현재 거제도포로수용소는 24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1.분수광장(6·25참전 16개국의 국기와 UN기가 계양되어 있는 분수광장이 있다.), 2.흥남철수작전기념비, 3.탱크전시관, 4.디오라마관(국내 최초의 단일 디오라마관으로써 거제도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5.북한군 남침, 6.국군의 사수, 7. 6·25역사관, 8.대동강 철교, 9.M.P다리, 10.포로생활관, 11.극기훈련장, 12.포로생포관, 13.포로수송, 14.기념촬영 코너, 15.여자포로관, 16.포로사상대립관, 17.포로폭동체험관 대립관(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공포로들의 폭동과 친공, 반공 포로들간의 격돌장면이 최첨단 북합연출기법으로 재현되어 긴박감과 위기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8.포로설득관, 19.포로 귀환 및 송환, 20.포로수용소유적관, 21.철모광,장 22.야외막사, 23.무기전시장, 24.잔존유적지 등 민족전쟁의 아픈 상처들이 곳곳에 묻어 있는 느낌이었다.
직접 격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휴유증으로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부모 형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태우고 있다. 다시는 전쟁의 비극을 격지 않기 위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방수지 독자 (서울문덕초등학교 /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