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수 기자 (문지초등학교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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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또 ‘모’야?"
동생은 신이 나서 말을 옮긴다. 벌써 연거푸 세 번째 ‘모’다. 어찌 된 일인지, 오늘따라 동생은 그 흔한 ‘개’나 ‘걸’보다 ‘모’가 더 많이 나온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그렇잖아도 기분이 꿀꿀한데... 윷놀이까지 7전 7패다. 뭐 이런 경우가 있는지... 한 번도 못 이기고 일곱 번을 내리 지다니... "히히, 우리가 또 이겼다."
동생은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신이 나서 내가 머리를 몇 번이나 쥐어박아도 그저 싱글벙글이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두 배로 내게 갚았을 텐데 오늘은 아주 너그럽다.
"한 판 더해!"
나는 바짝 약이 올라 동생에게 졸랐다.
"그만 하시지, 어짜피 또 질텐데..."
슬슬 약을 올리며 주섬주섬 윷판을 걷는 동생을 보니 나도 모르게 확~ 성질이 났다.
"야! 칠전팔기 몰라? 하기는 너 같은 녀석이 칠전팔기를 알겠냐?"
"그게 뭔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거랑 윷놀이랑 무슨 상관이야?"
‘역시, 어리석은 녀석. 한 번에 딱딱 알아들을 때가 없다니까...’
"지금 우리 편이 일곱 번 졌으니까, 여덟 번째는 이길 거란 말이지."
가뜩이나 화가 나는데 쓸데없는 설명을 구구절절 하려니 울컥 짜증이 났다.
"아무튼, 빨래 해!"
동생은 그러고도 몇 번이나 배짱을 튕기며 나를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도록 했지만 결국 한 판을 더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네 개의 윷을 손바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살짝 떨어뜨렸다. 엄마와 동생은 치사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있냐고 펄쩍 뛰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떡~"하니 ‘개’가 나왔기 때문이다.
진짜 안 되는 날이다. 운이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아무튼, 동생눈치를 봐서 슬쩍 말을 놓으며 한 칸 씩 더 옮겨 놓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한 온갖 반칙을 써가며 애를 썼지만 결국 또 졌다.
그것도 우리 팀 말은 하나도 못 뺀 채, 완전한 패배를 했다.
"팔전팔패"
"이런, 된장." 엄마도 이번에는 화가 나는 지 ‘된장, 고추장, 간장, 쌈장...’ 하며 온갖 ‘장’을 다 찾아댔다. 날씨가 좋으면 엄마가 백제 문화 축제에 간다고 했는데, 온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이제 냄새만 맡아도 비위가 상하는 전을 먹으며 윷놀이만 여덟 판 한 것이다.
‘쳇, 명절이라고 재밌는 것도 하나도 없네.’
괜히 심술이 났다. 동생은 상금이나 상품도 안 걸려 있었던 게임인데 그래도 마냥 좋은지 윷판을 걷으면서도 신이 났다. 어제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그저께는 하루 종일 집에서 X-ray를 찍으며 ‘방콕’하고....
긴긴 연휴동안 이렇다 할 게 없이 흐지부지 일주일을 보냈다.
옛날에는 온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동네에서 큰 윷판도 벌이고 송편도 빚고 즐겁게 보냈다는데, 요즘은 안 그런가 보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역시 별 볼일 없다. 엄마가 큰 맘 먹고 새 한복과 댕기도 사줬는데 고작 일요일 날 교회에 입고 간 게 다다. 어디 입고 나갈 데도 없고 뻘줌하다. 내일은 등교하는 날이다. 빨리 친구들 만나 수다나 실컷 떨고 싶다.
슬쩍 동생을 보니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포켓몬 딱지를 가지고 놀고 있다. 아무튼 걱정이라고는 없는 녀석이다.
동생이 부럽다.
‘아~즐거운 명절이 왜 이렇게 우울하냐?’
송이수 기자 (문지초등학교 /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