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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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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훈희 독자 (중부초등학교 / 6학년)

추천 : 4 / 조회수 :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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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기념관으로!!

지난 3월1일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운동을 한 안중근의사의 마음과 뜻이 서려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갔다. 이 기념관은 1970년 10월 26일 개관하여 지난해 10월26일 국민성금과 국가의 예산으로 새 기념관을 재개관하였다. 이 기념관은 안중근의사의 정신을 잇고자 건립된 건물이다. 안중근의사의 유품 많은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안중근의사는 1876년 강화도조약이 만들어진 3년 후 9월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임오군변, 갑신정변 등을 겪으며 애국심을 쌓았다. 1909년 크라스키노에서 단지동맹을 결성함으로 대한독립의 앞장서는 안중근의사가 되었다.

안중근의사의 기념관에는 안중근의사와 천주교, 교육운동, 국채보상운동, 동의단지회 등 많은 안중근의사의 관한 자료와 지식이 있다.

먼저 안중근의사는 1897년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수년간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상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는 등 조국과 민족의식을 살리기 위해 교육활동에도 힘을 기울였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회 관서지부 설치 등 국채보상운동에 또한 많은 참여를 하였다. 동의단지회에서는 회원 모두가 약지를 끊고 그 피를 한데 모아 태극기에 대(大) 한(韓) 독(獨) 립(立)을 써 독립을 위해 아주 힘을 쓰는 안중근의사의 의지를 볼 수 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경찰과 현병들에게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안중근이 행한 일은 우리가 놀라 감탄하는 일인데, 그 어머니의 사람됨도 조선의 드문 인물이다.” 라고 말이다. 이렇듯 그의 어머니가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안중근의사가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려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설치한 통감부의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을 하얼빈역에서 저격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슬픔과 노여움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을 저격한 죄로 인해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나는 안중근의사처럼 우리나라를 위해 약지를 자르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만큼에 용기는 없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여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우수한 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시간 10:00~17:00(1월~2월)

10:00~18:00(3월~10월)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장소:남산도서관 앞

진훈희 독자 (중부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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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수
숭신여자중학교 / 1학년
2011-03-29 16:37:29
| 안중근 의사 손도장을 보고 처음에 뭉클 했습니다.다시는 나라 뻇기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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